혜문왕 때부터 시작된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염파, 조사 와 같은 명장들, 인상여와 같은 훌룡한 문관의
등용으로 전국시대 초강국 진나라의 실질적인 라이벌로
부상한 조나라.
그러던 도중 기원전 265년 진은 맹장 백기를 보내,
한나라를 공격하게 했고, 그 결과 한은 영토가 두토막나며
북쪽 상당 지방이 고립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상당 태수는 진에게 항복하느리,
차라리 조나라에게 항복하겠다며 덜컥 조나라에 항복했고,
조 효성왕은 염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그 결과 진나라는 빡돌았고, 두 군대는 장평에서 만나게 된다.
전장 초기만 해도 판세는 조나라에게 유리했다.
노련한 명장이였던 염파는 장평에 진지를 건설하며
철저한 지구전에 들어갔고, 그 결과 진은 고전하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진나라는 이간책으로 염파를 경질시키고,
조나라 영웅이였던 조사의 아들 조괄이 염파를 대신해
장평 대전의 사령관이 된다.
그 후로 조괄은 마속 빰치는 트롤링으로 한파에서 밀린 후,
보급로까지 끊기며 졸지에 조나라 병사 30만명이 모두
굻어죽을 처지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조괄은 여기서 기껏 생각해낸 계책이....
바로 닥돌이였으니....
그 결과 조괄은 전사하고, 조군은 항복을 하게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백기는 반란 방지와 식량 부족을 이유로,
항복한 조나라 전군 모두 생매장시켜버렸고..
관용을 베풀어 살려준 15살 안된 아이 240여명을
제외한 조나라 군대 30만명은 모두 생매장 당해버리고 만다.
물론 이 숫자는 상당수 왜곡되어있다는게 중론이지만,
이 장평대전에 참가했던 조나라 군대 모두가 전멸한 것은
사실이며, 쓸만한 장정을 모두 잃은 조나라는
그후로 끝끝내 재기를 하지 못하며 망국의 길로 들어선다.
물론 이 생매장을 주도한 백기의 최후도 좋진 못했다.
장평대전을 승리로 이끈 백기는 이 틈에 조나라 한단까지
공격하자는 주장이 무효가 되었으며,
진나라 승상인 범수의 모함으로 소양왕 눈밖에 났고,
승산이 없는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결국 쓸쓸히 자결을 하며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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