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4월 30일, 국회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군의 기강 과 안보태세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 국방의원이 이 곳에 모인 군 수뇌부들에게 군번줄 착용여부를 물었다.
"여기는 군번줄을 논할 장소가 아닌 것 같다. 군번줄은 전시에 꼭 차고 다녀야 할 것이지 평시에 국회 답변나오면서 안차고 나온것이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 김태영 국방장관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정신이 나갔구만 그러니깐 국민들이 국방부 장관을 그렇게 보는거야 군복을 입고 군번줄을 안 맨단 말야 난 지금 군의 기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 국방위 국방의원
당시 군수뇌부에게 이런 질타를 했던 인물은 자유 선진당 이진삼 의원 그의 화려했던 과거 연혁이 새삼 눈길을 끌었다.
1967년 3월, 김일성은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는데 총역량을 집중하고, 무장공비를 전후방으로 침투시켜 민심을 교란하라는 지령을 전군에 하달한다.
김일성의 지령 하달 이후 북한 무장공비의 도발횟수는 1966년 57건 에서 1967년 118건으로 늘어났으며 그 피해 결과로 21사단 부연대장이 살해당하는 등, 휴전선 인근 아군과 미군의 GP(경계초소)가 수시로 공비의 습격을 받았다.
그해 9월 초, 군내 최고 실세로 알려진 방첩부대장 윤필용 준장은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때 방첩대 산하 609특공대장 이진삼(당시 31세) 대위가 보고를 한다.
이진삼 "대원들을 이끌고 북한으로 가겠습니다. 우리만 당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윤필용 "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
이진삼 "그래도 응징하겠습니다."
609특공대 본부로 돌아온 이 대위는 곧바로 작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609특공대는 방첩부대장의 직할부대로 '방첩대의 방첩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부대원은 30명 소수 정예
특공대장 이진삼 대위에게는 육군 전 부대에서 대원을 우선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진삼 대위는 '응징보복작전'에 투입할 대원들을 대한민국 국군이 아닌 북한 지리와 말에 익숙하고, 고난도 훈련이 몸에 밴 북한 무장공비 출신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생포된 공비 가운데 전향의사를 밝힌 15명 중 면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6명을 추려냈는데 이들은 20대 초중반으로 강원도 정선이나 충북 괴산 등에서 잡힌 공비들이었다.
이진삼 대위는 '남한 전사'로 신분이 바뀐 이들에게 단검 투척 등 기본적인 특수훈련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는 등 따뜻하게 대해줬고, 훈련과정을 지켜보며 이들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무렵 첫번째 작전이 시작된다.
9월 27일 일몰 직후, 작전명 : 금성천 작전
어둠이 짙게 깔리자 최전선 육군 모 사단 작전지역에 이 대위 등 북한군 복장을 한 4명의 요원이 나타났다. 각자 북한제 기관총, 수류탄, 탄창 4개(탄알 200발)로 무장했고 비상식량을 챙긴 상태였다.
이들은 황해도 개풍군 금성천을 따라 북한 지역 내 4㎞까지 잠입하여 다음날 오후 4시 지뢰매설을 하러 나온 북한군과 교전, 13명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복귀한다.
두 번째 작전은 10월 14일
전체 요원 6명 중 3명을 재선발했고 인솔자는 이번에도 이진삼 대위 였다.
당초 육군 모 사단에 인접한 북한군 GP를 습격하고, 사단장의 동선을 확인해 사살하려 했으나, 매복 중이던 적과 조우하면서 주변 지역에 대한 정찰에 만족하고 귀대한다.
10월 18일 밤 세 번째 작전에 나선다.
첫 번째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대원을 보강하는 등 다시 4명으로 팀을 짰다. 하지만 두 차례의 침투로 북한군의 경계는 대폭 강화된 상태였다.
이진삼 대위의 지휘아래 임진강을 헤엄쳐 건넜고, 낮은 포복으로 휴전선 너머 북한군 GP에 바짝 접근했다. 경계가 소홀해진 새벽 GP를 덮쳤고,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 8발을 투척하여 북한군 20명이 사살됐다. 그러나 치열했던 GP 교전 과정에서 1명의 대원이 희생됐고, 남은 3명은 더 이상 적지에서 머물지 못하고 부대로 귀환해야 했다.
다음 작전을 준비하던 이 대위는 더 이상 북한 지역에 침투할 수 없었다.
이들의 전과를 보고받은 방첩부대장 윤필용 준장이 이들의 침투작전을 제지 하는데, 이는 북한군이 자행하던 도발이 잠잠해졌고, 북한군 경계가 강화된 상태에서 침투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첩대 대공처장인 '김교련 대령'은 일선 전방부대에 '609특공대'가 오면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응징보복작전으로 북괴 무장공비의 도발이 주춤해졌다."
- 육본 군사연구실 자료
이후에도 국내로 침투한 공비사살, 땅굴탐색 작전등 특수전 임무를 수행한다.
위 내용들은 기무사에서 보관하던 기밀문서였으나 국방위원회 이진삼 의원에 의해 세상에 공개 되었다.
이후 이진삼 대위는
1990년 제 28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고,
2008년에는 제 18대 국회의원(국방위원회 의원)을 지내며, 해이해진 군기강을 문제삼아 당시 국방장관이였던 김태영 국방장관, 이상의 합참의장 등에 따끔한 지적을한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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