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날벌레의 시
나는 한 번도 사랑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씨앗처럼 온몸을 던질 뿐이다
그때마다 불꽃일 뿐이다
허공을 사랑한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벽
돌진하는 순간
한 방울 야성의 핏방울이 전부이다
그것이 너에게 주는
나일 뿐이다

마음이 몸에 붙어있지 않다면
마음 따로 몸 따로 사는 거라면
몸이 마음과 만나는 곳은
입술, 입술쯤일 것 같다
마음의 입구는 입술
마음에 없는 말을
입술이 혼자 들썩일 때
그건 마음이 모르는 마음의 심연을
몸이 먼저 알고 중얼거리는 것
아픈 몸이 마음을 부른다
통증을 건네 보자고
마음이 몸을 만나
슬픔을 담아두려 하나
그렇 수가 없다
입술이 열린다

박시교, 낡은 그리움
시간이 뒷걸음치는 걸 여기서 보겠구나
낡은 흑백사진 추억의 그 액자 속
그렇게 세월 흘렀구나
다시 못 올
먼 그리움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 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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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일부터 찾아오는 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