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한 말들로만
문장을 만들어 본다면
끊임은 없겠지만
예쁘기는 할 거야
지루하지 않게
문장/조성용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건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는 충분히, 실컷
가깝지 않았었다
더욱더욱 가깝게, 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게
의식까지도 가깝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그리움/전혜린
달과 바람이 가득한 밤
내가 가서 살거나 죽어도 좋겠다 싶은 곳은
늘 너였는데
해빙기/이운진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야
하도 오래되어서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
그 어디서도 나는 없어
학교에도 학원에도 버스에도 집에도 나는 없어
혹시나 해서 찾아가 본 분실물 보관소에도 나는 없었어
그렇다고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야
출석을 부를 때 분명히 ‘예’하고 대답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거든
하지만 그뿐 그 어디에도 나는 없어
부탁이야, 어디서든 나를 보면 곧장 연락 좀 해 줘
잘 타일러서 보내 줘
바다도 보여 주고
영화도 보여 주고
맛있는 것도 실컷 좀 사 먹여서 보내 줘
암튼, 하고 싶다는 거 다 해 줘서라도 꼭 좀 내 몸한테 돌려 보내 줘
우연히라도 나를 보거든 꼭 좀 연락해 줘, 후사할게
오래된 건망증/박성우
널
생각하면
난, 노을이 된다
부끄러움/최룡선
날이 무디어진 칼
등이 굽은 파초라고 생각한다
지나갔다
무언가 거대한, 파도가 지나갔나?
솜털 하나하나 흰 숲이 되었다
문장을 끝내면 마침표를 찍고 싶은 욕구처럼
생각의 끝엔 항상 당신이 찍힌다
나는 그냥 태연하고,
태연한 척도 한다
살과 살이 분리되어 딴 길 가는 시간
우리는 플라나리아처럼 이별한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매 순간
흰 숲이 피어난다
푸른 멍이 흰 잠이 되기까지/박연준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 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 주지, 내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서울의 겨울12/한강
네 이름 석 자 적는다
그저 바라본다
아, 너보다 더 시적인 건 없었다
네 이름/김민성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은 없다
터미널에서 낚시질/김상호
당신이 나를
보려고 본 게 아니라
다만 보이니까 바라본 것일지라도
나는 꼭
당신이 불러야 할 이름이었잖아요
추신/홍성란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고 싶다
욕심/이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