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10월 비행기편으로 귀순의사를 밝히고 남한에 망명.
1984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KBS 수습15기로 입사하여 국제방송국 러시아어 방송 담당 PD가 됨.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이씨는 러시아어 전문가로 활약함.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북한의 실상들을 여러모로 폭로하기 시작.
1997년 2월 16일, 김정일의 처조카로 남한에 귀순한 이한영씨가 분당신도시 자택에서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으로 피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이한영씨 피살사건은 두명의 북한 특수공작원이 저지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시의 공원묘지에 묻혔다.
1997년 의문의 피살을 당했는데, 당시 죽기 전 의식이 있을 때,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첩"이라고 말했던 바도 있고,
피살 현장에서 북한제 권총에서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에서 보낸 간첩에 의해 피살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당시 공안당국은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인 일명 '최순호 조'가 암살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것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의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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