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일 발언


"큰 공헌 하려는것, 자위 파병에 감사"
"위안부 문제 합의 축하..올바른 용단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
2.모로코 "서사하라 분쟁 점령 발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2133


*서사하라 분쟁이란?*
아프리카 북서부의 대서양 연안, 모로코와 모리타니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본디 1880년대 초부터 스페인의 영토에 속해 있었는데 탈식민지화 운동의 시대에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한 모로코, 모리타니, 알제리, 리비아 등이 영유권을 주장했다. 모로코는 1963년 이 지역을 점유한 스페인을 유엔에 제소하기도 했고 1974년 스페인 민주화운동 시기에 국경 지대에 군대를 집결시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1974년부터 현지주민들을 중심으로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이 결성되고, 모로코 정부군과의 내전이 시작된다. 스페인은 1974년 8월 유엔 감시하의 주민투표를 통해 서사하라의 귀속 문제를 결정한다고 합의하였지만 모로코와 모리타니는 극비리에 이 지역을 분할하기로 협의하여 군대를 파견하고 사실상 이 지역을 점령한다. 1975년 11월 35만명의 모로코군이 서사하라 대행진을 벌이고 스페인은 결국 1976년 2월 분할병합안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철수한다. 1976년 4월 모로코와 모리타니는 북위 22도선을 기준으로 북부 2/3는 모로코가, 남부 1/3은 모리타니가 분할한다.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은 엘아이운을 수도로 하는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여 모로코와 충돌한다. 폴리사리오는 알제리의 지원을 받아 모로코 정부군에 반격을 가했으며 군사력이 취약한 모리타니를 대상으로 폭탄테러를 연속적으로 감행한다. 모리타니는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다. 모로코는 폴리사리오와 전면 대결하면서 서사하라의 전 지역을 병합시키지만 국내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수세에 놓인다.
1979년 11월 유엔총회는 모로코군이 서사하라에서 철수하고 평화회담에 들어갈 것을 요구한다. 유엔 신탁통치위원회와 아프리카 통일기구는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을 이 지역의 대표로 인정했고,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생한 이 지역의 격심한 한발로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모로코도 휴전협정에 나선다. 1991년 9월 유엔의 중재 하에 휴전안이 합의되었고 1992년 1월 독립여부를 놓고 주민투표를 하기로 했지만 유권자의 대상을 놓고 대립하여 사실상 무기한 연기중이다.
3.아이티 대지진"콜레라 확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87378&ref=A

4.우려왕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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