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1
2017. 3. 18 오후 3:15:13
어느 골목 한구석에 위치한 인형가게의 진열대에는 낡은 꼬마인형 하나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매일 유리창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꼬마인형은 문득 자신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인형은 진열대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먼지를 맞고 바람에 뒹굴며 오랜 시간을 걷던 인형은 길 위에서 낯선 이를 만났습니다.
인형을 본 낯선 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습니다.
"낡은 꼬마인형아, 어딜 그렇게 가고 있니?"
낯선 이의 물음에 인형은 천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며 말했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 여행하고 있어요."
인형의 대답에 한동안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던 낯선 이는 돌연 팔을 펼치며 위협하는 투로 외쳤습니다.
"난 인간의 생명과 활력을 앗아가고 끝내 죽음의 품으로 데려가지.
사랑하는 이들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이 되게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리하게 만들지,
이렇게 무서운 나는 세상 모든 곳에 도사리며 끊임없이 그들을 시험한다. 인간들은 이런 나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만약 네가 인간이 된다면 너는 틀림없이 나를 만나게 될거다!"
잠시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인형은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난 질병이다!"
"그렇군요, 좋은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인형은 그를 지나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수목이 울창한 숲에 들어가자 좀 더 험난한 여정이 인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정처럼 숨은 가시나무에 실밥이 뜯겨나가기도 하고, 자신을 채갈지도 모르는 날짐승들을 피해 걷던 여정의 어느날,
인형은 다시 낯선 이를 만났습니다.
"낡고 상처 입은 꼬마인형아, 어딜 그렇게 가고 있니?"
낯선 이의 물음에 인형은 흘러내리는 솜을 고쳐잡으며 말했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 여행하고 있어요."
인형의 대답에 잠시 동정의 눈길로 인형을 바라보던 낯선 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로 인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탐한단다.
그 욕심은 이미 주인이 있는 것들에도 분별을 하지 않아, 인간들은 서로를 해치기까지 하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채 끊임없이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나로부터, 인간들은 도망칠 수 없단다.
만약 네가 인간이 된다면 틀림없이 나를 만나게 될 거야."
잠시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인형은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난 탐욕이란다."
"그렇군요, 좋은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인형은 그를 지나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숲을 벗어나 걸어가자 이내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낮의 고열과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밤의 냉기가 인형을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인내하며 걷던 인형의 앞에, 다시 한번 낯선 이가 나타났습니다.
"낡고 상처입고 지친 꼬마인형아.. 어딜 그렇게 가고 있니...?"
낯선 이의 물음에 인형은 갈라져 나간 천조각들을 주우며 말했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 여행하고 있어요."
인형의 대답에 우울한 표정이 된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인간들은 나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세상에는 내게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도 많이 있지...
그들이 삶에서 행하는 수많은 시도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실패와 고난 같은 길들...
끝내 나에게서 멀어지지 못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나락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그러니 네가 만약 인간이 된다면... 틀림없이 나를 만나게 된다..."
잠시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인형은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난... 절망이다..."
"그렇군요, 좋은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인형은 그를 지나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사막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걸어가던 인형은 세상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랜 여정으로 심하게 망가져버린 인형의 발걸음은 느려지고 있었지만, 세계는 여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늘과 구름도, 땅과 나무도, 태양과 달도 없는 순백을 한참 동안 걷던 인형의 앞에 또다시 낯선 이가 나타났습니다.
"죽어가는 꼬마인형아,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니?"
낯선 이의 물음에 인형은 지친 몸을 뉘이며 말했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 여행하고 있었어요."
인형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낯선 이는 인형의 옆에 몸을 앉히며 물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너에게 무슨일이 있었니?"
"질병을 만나고, 탐욕을 만나고, 절망을 만났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인간들을 괴롭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들일텐데,
그들이 틀림없이 너에게 여러 경고를 해주었을거야. 그럼에도 아직 너는 인간이 되고 싶니?"
그의 말에 옅게 미소를 지은 인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인형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그는 어째서인지 물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인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질병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격리시켜 서로가 서로로 인해 고통받게 만든다 했어요.
그 덕분에 저는 인간들이 서로의 아픔에 고통스러워할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탐욕은 자신으로 인해 인간들이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한다고 했어요.
그 덕분에 저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괴롭혀가면서까지 나아지고자하는 자기애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절망은 그들이 삶에서 행하는 수많은 시도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만나 절망한다고 했어요.
그 덕분에 저는 인간들이 앞서의 수많은 실패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언가에 시도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노곤함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말을 마친 인형은 이제 흐려지는 시야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는 낯선 이를 바라보던 인형은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이 없던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죽음이란다. 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것 같구나."
몸을 일으킨 죽음은 두 팔을 벌려 세계를 받아들였습니다.
온 우주가 그의 품 안에 머무르며 하나의 빛이 되자 그는 그것을 꼬마인형에게 건냈습니다.
그것은 삶이었고, 아이는 세상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번에 군대를 가게 된 친구가 철학적인 내용으로 이야기를 써달라해서 써봤는데.. 친구가 오그라들어 죽어버릴까 걱정이 돼서 대숲 의견 먼저 듣고 싶어 제보합니다ㅜㅜ
그리고 베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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