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무심히 보는 물 속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제 길을 간다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유유히 간다길은 어디에도 없는데쉬지 않고 길을 내고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나는 배운다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나는 들어선다나희덕, 빗방울, 빗방울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사선이다세상에 대한 어긋남을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수직으로 흘러내린다사선을 삼키면서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출렁거리는 수평선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낯선 골목 헤맬 때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소리 귓가에 들린다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번은 생을 떠난다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 가고 싶었을까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박상천, 통사론(統辭論)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뭐 그리 중요한가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눈물도 보이지 않고가슴 설레임도 없고한바탕 웃음도 없고고뇌도 없다우리 삶은 그처럼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이재무, 낙엽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세 행 짜리 짧은 시가 오늘 밤 나를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 나서 자라는 동안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바닥에 한 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 모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