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대한민국의 제 14대 대통령
김대중 전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투사.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첫번째 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기에 기실 보수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지나친 타협주의로 변절자나 다름 없다고 불리며,
IMF 라는 커다란 실책을 남긴 대통령이기도 하다.
1. 하나회 청산
"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 밖에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김영삼 문민정부 최고의 업적.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한 기념비적인 사건.
당시까지도 군 인사를 좌지우지 했던 하나회 출신 정치 군인들을 척결한 일은,
단순히 김영삼 정부의 조기 안착 차원을 넘어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만든 기반이라 평가받는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YS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부터 한국의 민주화 지수가 급상승했고,
그의 친구인 DJ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제대로 된 민주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2. 금융실명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 거래는 실명으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경제민주화의 큰 공로.
갑작스런 정책 시행으로 수많은 검은 돈이 날아갔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은 예정에 없던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 후 대통령 긴급 명령을 전격 발표했고 즉각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었다.
대통령 비밀 지시에 따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공무원 10여 명이 모 아파트에서 비밀 리에 준비했으며,
대통령의 경제 교사이자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박재윤에게도 비밀로 부치고 벌인 일이었다.
3. 역사 바로 세우기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불기소 처분했으나
김영삼의 강력한 의지로 5.18 특별법을 제정되었고 사형을 구형하는데 이른다.
그는'12.12. 혁명'을 '12.12. 군사혁명'으로 '광주 사태'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정했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을 진행하였다.
또한 전국에 있는 일재 잔재들을 제거했고, 일본의 반발을 무시한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4. 3당 합당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단일화 실패하며 사이가 틀어졌고, 6월 민주항쟁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노태우가 당선되고 만다.
이에 김영삼은 단일화 갈등을 피하기 위해 민정당(노태우), 공화당(김종필)과 손을 잡았고 민자당이 출범했다.
김영삼은 집권에 성공해 당권을 장악한 후 군사 정권에 협력한 인물들을 하나둘 제거했으며,
5.18 특별법을 제정해 노태우를 구속한 후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등 군사 정권 척결에 앞장섰다.
그러나 IMF로 김영삼이 몰락한 후 이회창이 당권을 잡으며 한나라당이 자유한국당을 계승했고,
김영삼의 정치적 후계자들은 훗날 군사 정권과 결탁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김영삼의 세력권이었던 경상남도도 한나라당의 세력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5. IMF 구제 금융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
김영삼 정부 최악의 실책.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문민정부는 외환 거래 자유화를 시행하고도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환율 안정 정책을 과도하게 추구하였으며,
이미 정경유착의 정점이었던 한보그룹 부도사태 등에서 경제적 위기가 예측되었음에도,
정부관료들은 한국 경제는 건강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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