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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년 전 (2017/6/03) 게시물이에요










 

 

 

 

 

 

 

 

 

 

 

 

 

 

 

 

 

 

 

 

 

 

 

 

 

 

 

 

 

 

 

 

 

 

 

 

 

 

 

 

 

 

 

 

 

 

 

 

 

 

 

어떤 고백은 거짓말보다

뾰족하지

눈썹 밑 대롱 달린 고드름같이

내가 실은 널 사랑,

하지 않는다는 것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았다고

눈 위를 기쁘게 걷는다 하여

내가 좋아한단 말은 또 아니지

츄파춥스를 빨던 입술로

상냥하게 헤어지기

딸기향은 날아가고

사탕 막대기처럼 서서

전하는 말

사랑했다는

옛일

티끌이던 눈발이

무릎 꿇은 독백들이

서늘한 발음으로

까맣게

얼음 덩어리를 부풀리는 새벽

- 폭설 이후 / 김은경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너를 꿈꾼 밤
문득 인기척 소리에 잠이 깨었다
문턱에 귀대고 엿들을 땐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 고쳐 누우면 지척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소매깃 소리

아아, 네가 왔구나

산 넘고 물 건너 누런 해 지지 않는 서역 땅에서
나직이 신발을 끌고 와 다정하게 부르는
너의 목소리

오냐, 오냐, 안쓰런 마음은 만릿길인데
황망히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밖엔 하염없이 내리는 가랑비 소리

후두둑

댓잎 끝에 방울지는 봄 비 소리


- 너의 목소리 / 오세영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얼어붙은 남한강 한가운데에 
나룻배 한 척 떠 있습니다 
첫얼음이 얼기 전에 어디론가 
멀리 가고파서 
제딴에는 먼바다를 생각하다가 
그만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룻배를 사모하는 남한강 갈대들이 
하룻밤 사이에 겨울을 불러들여 
아무데도 못 가게 붙들어둔 줄을 
나룻배는 저 혼자만 모르고 있습니다


- 남한강 / 정호승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흘레붙은 개들이 다시 동네 지붕을 흔들어댔다

대문에 녹슨 자국들이 그 아이 여드름처럼 박혀 빛나고 있었다

성난 고드름처럼 아니 곧 녹을 것처럼

- 1995년 2월 14일 中 / 김은경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망치가 못을 친다 
못도 똑같은 힘으로 
망치를 친다 

나는 
벽을 치며 통곡한다


- 사랑 / 이산하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나 여기 전봇대처럼 서 있을게
너 한 번 지나가라
그냥 아무렇게나 한 번 
지나가거라
옷깃 만져 보거나 소리내어 울거나
안 보일 때까지 뒷모습 주시하지도 
않을 테니 그냥 한 번
지나가거라
시장을 가듯이 옆집을 가듯이
그렇게 한 번 지나가거라


- 그리움 / 김종환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바람 든 노을을 마셔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사랑에 빠질 때
벌레 먹은 포도나무 잎사귀가 열매의 통증을 읽어요
사라지는 구절들을 느리게 후렴하는 밤
흙과 자갈, 오래된 구릉과
나도 모르게
잘 여문 눈물


취한 시간을 위한 말들 中 / 김은경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바위도 하나의 꽃이었지요
꽃들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찾은 후 
나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주신 후 
나는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시들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바위도 하나의 눈물이었지요 
눈물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떠난 후 
나의 손을 영영 놓아버린 후 
나는 또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당신을 향한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 석련 / 정호승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벼랑 앞에 서면 

목숨 걸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마이산 탑사 앞 
암벽을 끌어안은 능소화 또한 
아무도 받아 줄 이 없는 절박함이 
벼랑을 끌어안을 힘이 된 것이리라 

매달리는 사랑은 언제나 불안하여 
자칫 숨통을 조이기도 하지만 
실낱같은 뿌리마저 내밀어 
지나간 상처를 바아들여야 
벌어진 사이가 붙는 거라며 

칠월 염천 등줄기에 
죽음을 무릅쓴 사랑꽃 피었다
노을빛 조등 줄줄이 내걸고 
제 상 치르듯 
젖뗀 잎들은 바닥으로 보내며 
생의 절개지에 벽화를 그리는 그녀 

목숨 걸고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서 유서 쓰는 일이다


- 어처구니 사랑 / 조동례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고백건대 태어나 한 번도 외롭지 않은 적 없었으므로

나는 오늘도 너를 사랑한다

나는 오늘도 

폭발 직전의 먹구름을 시로 바꾸어 읽는다


- 어떤 이유 中 / 김은경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당신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어요

당신은 서산 너머로 흘러갔을 뿐인데

나는 아직도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지상의 그늘들이 포개지는 저녁이 와도 내 산책은 저물지 못했는데

나는 계속 덧나기만 했어요

덧난 자리마다 부끄러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또다른 길들로 무수히 갈라졌어요

갈라져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제 가느다란 가지들로 남아 나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가 없어요

내 산책은 당신을 붙잡을 수 없어요

다만 이렇게 흔들리기 위해 이렇게 오래 흩어졌던 거예요

내 생의 이렇게 많은 다른 가지들을 만들었던 거예요

당신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어요


- 생의 다른 가지 / 이수명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 윤동주의 서시 / 정호승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거문도에 들었네

동백을 보러

절벽 앞을 세워

그댈 보려 왔었지

와서 못 본 것

꽃만 아니었네

져서 처참하네

뚝뚝 목을 분지른 동백

피가

햇볕에 타들어 가네

다리를 절룩이며

머리를 조아리며

거문도 우체국에서

편지 마저 쓰지 못하네

하늘은 바다

바다는 바다

수평선 다방이 바다더러

수평선을 구걸하네

- 수평선 다방 / 김은경

 안경 낀 첫사랑 남자애와의 실연도 짧게 이루어졌다 | 인스티즈

눈사람 한 사람이 찾아왔었다
눈은 그치고 보름달은 환히 떠올랐는데
눈사람 한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마당에 불을 켜고 맨발로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부끄러운 듯 양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눈사람 한 사람이
편지 한 장을 내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새도록 어디에서 걸어온 것일까
천안 삼거리에서 걸어온 것일까
편지 겉봉을 뜾자 달빛이 나보다 먼저 편지를 읽는다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 꿈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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