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측 문헌에 나오지 않는다.
일본인의 기록에 짤막하게 기록되었을 뿐이다.
조선인으로 귀화한 이 일본인의 본명은 모른다.. 조선인으로 귀화한 조선식 이름도 모른다. 자세한 내용이
기록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인 복장을 입고 능숙하게 일본말을 했던 사람이 어느 가게집 주인에게
찾아가서 사죄를 했다는 내용이 다만 기록되었을 뿐이다.
이 일본인은 오사카에 어느 포목집에서 일했던 점원이다.
중국산 비단, 조선산 면포를 팔던 가게인데, 어느 날 사장이 점원( 일단은 점원으로 하자.)에게
외상값을 받아 오라고 일을 시켰다.
점원은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외상값을 받으려고 했지만,
한 푼의 돈을 못 받았다. 보나마나 사장이 역정을 낼게 뻔하고, 꾸중 듣기 싫어서 점원은
가게로 돌아가지 않는 체로 도망쳤다.
종업원이 돈도 받아 오지 않고, 연락을 끊었으니 가게의 사장은 화가 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 일본인은 오사카를 빠져 나가 교토, 나가사키 등지로 갔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결국 대마도까지 흘러들어간 그는 부산포에 있는 왜관에 까지 가서
일을 했다고 한다.
무슨 사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조선인으로 귀화했고,
어느 조선인 관리의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인으로 삶을 살았지만, 오사카에 있었던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이 일본인은 결국
1748년에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일행에 참가하였다.
대마도와 이키, 후쿠시마, 시모노세키를 걸쳐 여러 지역을 돌아 다닌 조선통신사는 에도로 가는
길에 오사카에 들린다.
자기가 일했던 오사카에 여정을 푼 그 일본인은 자기가 과거에 있었던 가게로 찾아간다.
조선인 복장을 한 어느 사람이 능숙하게 일본말로 인사를 건네자, 처음 그 가게 주인은 누군인지 몰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갔어도 옛날 자기가 부리던 종업원의 얼굴이 기억나자, 그 조선인의 정체를 사장은 금방 알아챘다.
조선인으로 귀화한 일본인은 사장에게 사죄의 절을 하면서 조선산 옷감을 사죄의 표시로 주었다.
사장도 그 당시의 일은 금방 잊었다면서 괜찮다고 말을 하여 그 일본인은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조선인으로 귀화하여 옛날 가게 주인에게 사죄를 올렸던 일은 (그 가게가 있었던) 마을에서는 대단한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 이후에 조선인으로 귀화한 일본인의 기록은 없다.아마도, 오사카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마치고
조선통신사 따라 일정을 수행하고 조선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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