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pt/4602274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이슈·소식 유머·감동 정보·기타 팁·추천 고르기·테스트 할인·특가 뮤직(국내)
이슈 오싹공포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3023
이 글은 8년 전 (2017/6/19) 게시물이에요


0.
이십 대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연말이 지나면 나는 새로운 삼십 대를 맞이하게 되어 있었다. 생애 한 번뿐일 스물아홉의 크리스마스와 서른의 새해, 그것은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나 새로운 각오를 불러일으킬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된 근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람들은 매일 상상할 수 없이 험하게 아팠고, 나는 이미 시들어 있었다.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존재의 위기감은 늘 엄습했고 기록해야겠다는 열망은 말살되어 문장은 한 자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런 날은 으레 소복한 눈이 내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선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이십 대의 마지막 성탄제 전날 아침에도 나는 쓸쓸함을 안고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눈발은 솜처럼 따뜻했고,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은 포근해 보였으며, 내 머리 위에는 외로운 새싹이 동트는 듯했다. 나는 감정을 숨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응급실로 들어와 평소처럼 특별한 날의 근무를 시작했다.

1.
특별한 날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오자 세상에서 자신만이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저주받을 숫자와 날짜와 감정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오른 자신의 우울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무게라고 느꼈다. 그렇게 헤아려 보더라도, 그 일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일단 그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집에 있었다. 늘 그렇듯, 부모는 나가고 그는 집에 홀로 있었다. 그에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그리고 희망도 없었다. 매일 그는 빈 집에 남아 우주로 사라져버릴 방법을 골똘히 강구했다. 그리고 그에겐 그 좁은 집에서 늘 주시하던, 자신을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한 가지의 주황빛 수단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눈가에, 모두가 행복감에 마음이 부풀던 그날,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그는 밤새 결심하고 유서를 썼다. 문장이 나아가자 마음이 더 굳어졌고,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고 여느 때처럼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가자 그는 그 일을 결행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주방으로 간 그는 잘 벼른 칼을 집었다. 그리곤 눈여겨보던 주황색 가스 호스를 붙들고 사정없이 썰어 버렸다. 비스듬하게 잘린 호스에서 가스가 눈에 보이듯 맹렬히 새어 나왔고, 매캐한 냄새가 좁은 집에 퍼져나갔다. 그는 그 냄새를 맡으며 식탁 위에 올려놓은 유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나쁘지 않았다.
겨울이라 창은 전부 닫혀 있었다. 곧 대기보다 가벼운 도시가스는 천장부터 차곡차곡 채워져 아래쪽으로 넘실댔다. 그는 그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고, 자신의 몸이 기어코 우주로 향해 떠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 이제 이 집안에는 공기보다 가벼운, 흡사 우주 같은 대기만 가득했다. 그는 유서를 눈앞에 내려놓고, 준비해두었던 라이터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짤깍.'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다. 그리고 즉시, 천지사방을 부숴버릴 듯한 소리가 뻗어나갔다.
처음 불길은 그의 손에서부터 뻗어나갔다. 찰나에 그는 마치 조물주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어서 그 공간의 대기는 굉음과 함께 한꺼번에 불탔고, 그의 피부를 포함한 그 공간의 모든 표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집이 단방에 날아가 버릴 듯한 굉음과 함께 폭발하자, 너무나 놀란 사람들은 그 연기를 쫓아 사방에서 달려왔다. 그 사람들 중에는 비보를 듣고 달려온 그의 부모도 있었다. 곧 소방차가 그 집을 에워쌌고, 물길이 뻗어나갔다. 이윽고 사람들이 굳게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온 집은 형체도 없이 날아가 있었다. 모든 벽, 모든 집기, 모든 가구, 모든 사물, 모든 유서,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이미 전부 불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우주같이 변한 검은 공간에서, 검게 탄 한 사람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2.
크리스마스 이브의 낮 근무는 한산한 편이었다. 아직 보통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평범한 평일 낮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일은 특별한 휴일이므로, 밤이 되면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릴 것이다. 이것은 일정한 공식과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고요는 아무래도 폭풍전야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 순간, 한 형체가 폭풍같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불탄 숯덩이 같은 형체를 두고 대원들은 심폐소생술 중이었다. 남자로 추정되는 그 검은 형상은 사지를 뻗고 누워 있었고, 주황색 옷을 입은 대원은 그의 흉부를 누르고 있었다. 그 몸은 너무 심하게 불타 보였으며, 심지어 아직도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매캐한 연기가 전신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고, 옷 따위는 진작에 날아가고 헐벗은 피부가 검게 구워져 바삭바삭했다. 대원들의 옷자락과 손은 온통 검댕 투성이로 물들어, 그 모습은 화재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분명 삶을 되돌리기 위한 그 소생술은 훨씬 더 급박한 느낌이 들었다.
곧 그가 실린 카트는 김이 모락거리는 채로 들어와 집중치료실 한복판에 누웠다. 나는 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들었다.
"집 가스를 모아서 폭발시켰답니다."
'이런 미친...'
반사적으로 혼잣말이 튀어 나갔다. 허나 이유가 어떻게 되었건, 살려야 했다. 심정지가 확실하니 먼저 기도를 확보해야 했다. 나는 한 대원이 그의 입가에 붙인 채 짜던 엠부를 받아 쥐고, 즉시 삽관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검게 타서 표정도, 형체도, 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고민할 겨를이 없이, 나는 엠부를 떼자마자 장갑을 낀 손으로 그 형체의 목을 뒤로 힘껏 젖혔다. 관절은 오래된 고기같이 질겨 저항이 심했고, 매캐한 특유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 나는 말라버린 입술 사이를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강제로 비집어 연 다음 블레이드의 연약한 불빛에 의지해 코를 박고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이 이미 다 녹아 흘러내려 있었다. 급한 마음이 들어 긴 튜브를 집어 들어 기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짐작해 사정없이 쑤셨다. 기도 입구가 뭉개져 튜브는 들어가지 않고 질긴 살이 마구 묻어 나왔다. 곤죽 더미를 헤집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안은 이미, 내가 생각하는 질서의 우주가 아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죽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던져버리고 그 남자를 보았다. 전신이 미라처럼 검게 바짝 말라 있었다. 이리 심하게 탄 사람은 처음 보았다. 아니, 살아있는 생명체를 이토록 태운 것조차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옛날 고비사막 횡단에서 본 구운 양의 머리를 떠올렸다. 그 사막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위구르족은 양의 머리를 구워서 먹는다. 양의 뇌에는 기생충이 많기 때문에, 그들은 양의 두개골을 훨훨 타는 불길 한 가운데 넣어 그 안의 뇌와 뇌수까지 충분히 익힌다. 그래서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는 양의 두개골은, 누가 봐도 악의를 가지고 시커멓게 구운 형상이다. 이제 머리 위 뼈를 망치로 조금만 내려쳐도 그 형상은 부스러지고, 알맞게 익은 뇌를 숟가락으로 떠 먹을 수 있다. 나는 그 남자의 머리가 그때 목격했던 양의 두개골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이런 형상의 두개골을 지닌 사람이 성탄제에 참가할 자격은 없었다.
"소생술 중지. 즉사했습니다."
간호사는 하얀 리넨을 가져와 그의 시체에 덮었다. 검댕이 하얀 모포에 검게 묻어 나왔고, 그의 얼굴과 사지만 하얀 모포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허름하게 차려입은 그의 부모는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로 달려왔다. 다가오는 그들의 감정은 너무 격해, 무슨 결인지 한 번에 파악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양머리 같은 그의 얼굴을 주저 없이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이 비열한 새끼. 멍청한 자식. . 너는 살 자격이 없어." 그의 주먹에서 검댕이 묻어 나왔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한켠에서 그의 탄 손을 집어 얼굴을 묻고 손발을 뻣뻣이 편 채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마치 솜씨가 나쁜 요리사가 저지른 요리에서 날 법한 탄내가 아직 소생실에 자욱했고, 그들의 부모는 당장 그 끔찍함에도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단 하루, 단 한순간만에 그들의 아들은 즉사했고, 그들의 좁은 보금자리는 단숨에 폭발해서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이제 이 성탄제에 돌아갈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도 더 이상은 세상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 인간의 형상이 아닌 것 같은 몸을 내려치며 쉴 틈 없이 욕설을 뱉었다. ". . 비열한 ." 손발을 부르르 떨고 있는 이제 어머니는 모든 얼굴 근육을 사용해서 우느라, 오히려 너무 심하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극에 달한 극도의 감정은 결국 표현하기조차 버거운 법이었다. 그녀가 뻗은 검댕투성이 팔이, 이미 타버린 그의 것처럼 뻣뻣했다.
나는 할 일이 끝났으므로 그대로 소생실을 나왔다. 등 뒤에선 이제 괴상한 함성으로 변해버린 곡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등 뒤를 돌아보았다. 흡사 거적 같은 리넨 아래로 삐져나온 그의 두 발이 보였다. 그가 선채로 지면을 딛고 불길을 맞았기 때문일까. 그의 발바닥만은 유난히 하얗고 창백하게 불타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래서 그의 발바닥과 발등은 흑백의 극명한 차이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묘한 인간의 발이었다. 나는 그것이 산 자와 남은 자의 경계인지,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의 경계인지, 아니면 아직 불타지 않은 그 생의 한 조각 미련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3.
한 남자는 그렇게 우주로 떠났다. 그가 너무 완벽하게 떠난 탓에 가족들은 몸을 누일 곳조차 사라져 버렸다. 장례가 끝나면 그들은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지만, 일단 그들은 응급실에선 떠나야 했다. 곧 모두가 사라지자, 자욱한 탄내만 남기고 응급실은 조용해졌다. 나는 외인사로 사망진단서를 써서 열 장을 출력하고, 그 검게 탄 머리를 생각하느라 낮 시간을 보냈다. 바깥 창에는 아직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밤이 되자 예측대로 성탄제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소보다도 많은 숫자라 더 이상 창밖을 내다보거나, 검게 탄 머리를 생각할 틈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성탄제와는 관계가 없어 보였고, 어떤 사람들은 응급실에서 맞이하는 특별한 날이 아쉬워 보였다. 나는 평소와 비슷한 감정으로 그들을 기계적으로 진료했다. 그 와중 어쩌면 가장 성탄제와 관계가 없는 것은 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 깊은 밤에는 한 노인이 왔다. 전신상태가 안 좋아 뼈마디가 고스란히 보였고 가죽이 늘어져 있었다. 보호자가 설명했다. "평소 누워 숨만 간신히 쉬셨는데, 오늘은 그것조차 못 하게 되셨습니다." 그 마른 노인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부릅뜬 눈을 감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이 다해 죽었다기 보다는 말라서 죽어버린 느낌이었다. "네. 장례처리하시도록 하지요." 그 노인은 결국 주님의 생일까지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랬다 할지라도 망자는 구원받은 표정을 짓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성탄제에 더 이상 죽지 않았다.
새벽에는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들뜬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고 베이고 쓰러져 각자의 사정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심하게 많이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대부분 그들의 진단명은 골절, 염좌, 타박, 열상에서 그쳤다. 다만 특별한 날 골절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조금 더 불행했고, 염좌나 타박을 들은 사람들은 조금 덜 불행했다. 반면 내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불행하고, 많은 시간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깊은 새벽이 되자 골절, 염좌, 타박, 열상의 개수는 조금 줄었다. 나는 겨울밤이 비치는 당직실에서 잠시 몸을 눕힐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심하게 소모되어, 잠시 눈을 감으면 심장이 눈에 보이게 쿵쾅거렸고, 머리로 향하는 혈액이 과해 마치 뇌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내게 심박의 개수만큼 골절, 염좌, 타박, 열상 등의 불행을 일으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검게 탄 머리를 떠올리며 정신이 몽롱해질 때면 당직실의 전화가 울렸다. 또, 불행한 사람들의 골절, 염좌, 타박이 찾아왔노라고. 그러면 나는 매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불행의 전열을 가다듬고 크게 팔을 흔들며 응급실 복도로 나섰다.
이것이 이십 대의 마지막 성탄절 밤이었다.

4.
이십육 시간이 넘는 근무를 마치자 동이 텄다. 눈발은 이제 멈추어 있었다. 나는 여태껏 숨만 쉬다가 이제 그것마저 못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인계를 마치고 밤새 눈이 덮여 검게 지저분해진 차에 올랐다. 거리는 전날 사람들이 눈을 맞으며 흥청망청 거리에 흩뿌렸을 행복의 잔해까지 깔끔하게 치워진 채 한산했다. 휴일 오전이라 평소보다도 사람들은 적었다. 물론 골절, 염좌, 타박, 열상 등의 잔해도 거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주중 낮에 일을 하고 밤과 주말에는 쉬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애인을 만나 사랑하는 보통이에게는 알 수도 없으며 보이지도 않는 것이었다. 마침 쓸쓸한 노래가 세상에 새로 나와 차에서 틀었다. 하얗고 서늘한 하늘을 배경으로 음악이 울리자, 죽을 정도로 좋았다. 나는, 그러니 죽을 수밖에, 라고 중얼거렸다. 집으로 가는 멀지 않는 길에 호된 졸음이 쏟아져 차가 몇 번쯤 멈추어 섰다.
가족들은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렵고 고되게 번 돈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 가족들을 깨웠다. "성탄절이잖아요." 눈발은 원래 흔적이었던 것처럼 다시 내렸다. 고기는 불판 위에서 알맞게 구워졌고, 절대로 검은빛을 띠지 않았다. "어제 한 남자가 폭발해서 죽었어요." 가족들은 전날 벌어졌던 비극을 심드렁하게 들으며 고기를 먹었다. 그렇다, 비극은 반복해서 듣기만 해도 지겨워진다. 직접 겪는 비극이어도 그럴 것이다. 나는 질기고 무딘 고기 같은 머릿속으로, 고기가 타지 않게 알맞게 구워 먹었다. 가끔씩 정신이 나갈 뻔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빗금 같은 햇살마저 내렸다. 조금의 행복감으로 잠시 놀랐지만, 역시 어떤 사랑하는 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몸을 침대에 눕혔다. 졸음으로 손발이 뻣뻣해졌다. 나는 잠시 간밤의 골절, 염좌, 타박, 열상 등을 연상하다가, 죽음과도 같은 잠에 들었다.

5.
눈을 뜨자 한밤중이었다. 사람들이 술을 따라 마시거나, 애인의 손을 잡고 숙박업소 근처에서 서성일 시간이었다. 몸은 날카롭지 않고 둔했고, 몰골은 말이 아니게 추했다. 나는 분통이 터질 정도의 심한 허기를 느끼고 식탁으로 나와 닥치는 대로 밥을 떠 넣었다. 신경이 무디어지면 잠시 수저를 들고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가열되면 다시 또 떠 넣었다. 나는 온갖 모욕이 얼굴에 붙어 손가락질 받기를 원하는 사람 같았다.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티브이 속에서는 남을 웃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익살을 떨고 있었다. 늘상 행복한 범주 안에서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직업, 저건 어쩌면 가장 절박한 직업이 아닐까. 절대로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그들의 이면이 그들의 전부라면, 결국 종국에는 영영 불행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저런 직업을 택하곤, 고독이 어느 해충의 독소처럼 온몸에 피어올라 돌연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여간 그들의 익살에 나는 잠시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막 나온 침대로 다시 몸을 뉘어 추한 이들이 서로 사랑하다 불행해지고, 사랑은 이해가 아닌 전부 오해라고 주장하는 책을 집어 읽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불행하기에 추해진 것인지, 아니면 추한 것이 불행한 것인지에 관해 갈등했다. 그러자 평생을 증오 받는 것과 죽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나는 문득 사랑했지만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과 밤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혹은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냥 다른 이의 여자가 되어버린 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혹은 사랑했지만 어떠한 사이도 아니었으므로 지금 생각조차 나지 않는 사람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고독하게 우주의 한 점으로 누워있고 그네들은 너무 멀었다. 나는 고독을 잉태하느라 이렇게 누워있다. 이제 이것들은 내 혈관을 타고 돌고 신경을 조이고 풀며 나에게 골절, 염좌, 타박, 열상 같은 것을 일으킬 것이었다. 이들이 다 자라면 나는 세상에 모든 적막을 풀어 놓고, 증오받지도 못하고 죽겠지.
그리고 나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비사막 길거리에서 불타는 양머리에 관해서 떠올릴 것이다. 이 생은 흔한 거리에 내던져지고, 화염을 뒤집어쓰고, 내려치는 주먹을 맞는 에 가까운 것이라고, 이 생이... 이런 생은... 생각이 머릿속을 깊게 버무리자, 나는 내 우주가 전부 회오리쳐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안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내일의 불행을 견디기 위해 다시 죽음과도 같은 잠이 들어 의식을 잃었다. 꿈은 달의 뒷면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이십 대와 성탄제는 전부 지나고 새로운 삼십 대가, 그 처참하고 먹먹한 불행이 다시 나에게.


http://m.blog.naver.com/xinsiders


시리즈 궁금해서 제가 직접 퍼왔는데 문제되면 말해주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정부에서 도입 추진 준비중이라는 구독형 영화 패스.jpg
17:51 l 조회 34
250만원짜리 알바.. 한다 vs 안한다
17:49 l 조회 118
2025 가요대전) 8살 후배한테 죽빵 처맞은 연준2
17:47 l 조회 429
이성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뭐야?
17:45 l 조회 187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태도
17:41 l 조회 759
성심당 임신부 프리패스 근황
17:41 l 조회 669
너무 예민해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유형
17:38 l 조회 936
키 182cm 여성이 받는 스트레스2
17:30 l 조회 1317
"용사님께, 그쪽 세계에서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17:29 l 조회 1144
흑백 요리사 2 하다하다 안성재를 흥분시켰던 셰프[스포]1
17:28 l 조회 2314
20대 초반 같은 연애는 다신 못하는 건가?
17:23 l 조회 1485
누군가 울고 있을 때 mbti별 반응
17:18 l 조회 1895
나도 노력했으니 너도 좀 해
17:18 l 조회 660
약속 당일에 취소하는 친구
17:16 l 조회 789
반오십이라는 말이 싫다
17:11 l 조회 758
금사빠에 남미새 어떻게 극복하나요
17:07 l 조회 1936
2025 SBS 연예대상 대상후보.jpg1
17:07 l 조회 2568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결국에는 꽃길만 걸었음 좋겠어
17:00 l 조회 2782
휴식기를 갖는다는 치어리더 김정원.jpgif
17:00 l 조회 1159
일하다가 운 의사
17:00 l 조회 849


12345678910다음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