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이든 울고 싶은데도
울 곳이 없어
물 틀어 놓고 물처럼 울던 때
물을 헤치고 물결처럼 흘러간 울음소리
물소리만 내도 흐느낄 울음은 유일한 나의 방패
아직도 누가 평행선에 서 있다면
서로 실컷 울지 못한 탓이다
집 어느 구석에서든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
가끔씩 어느 방구석에서든 울고 싶을 때는
소리 없이 우는 것 말고
몸에 들어왔다 나가지 않는 울음 말고
우는 듯 우는 울음 말고
저녁 어스름 같은 긴 울음
폭포처럼 쏟아지는 울음
울음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 울음
집 구석 어디에서든 울 곳이 있어야 한다
웃는 울음/천양희

기지개를 켠다
창밖 길 건너 장례식장은 불이 꺼졌다
몸이 추처럼 무거운 건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울음소리가
젖은 책장처럼 꿈에 들러붙었기 때문
흙갈이를 해 줘야지 생각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밤새 화분 위로 낯모르는 색이 피었다
전화를 걸어야지 했는데 주전자 물 끓는 소리에
그만 어제인 듯 잊었다
“한 발은 무덤에 두고 다른 한 발은 춤추면서 아직 이렇게 걷고 있다네”
검은 나비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뤄 뒀던 책을 펼치자
창을 넘지 못하는 나비들,
그 검은 하품을 할 때, 느른한 음색 속으로 등걸잠 같은 생이 다 들었다
나는 살고 있고, 내가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삶을 취미로 한 지 오래되었다
오래된 취미/이현호

내 숱한 일기장에 붉은 잉크로 적히곤 했던 나만의 Y야
파도의 끝자락만이 고왔던 너의 어깨에
장미 덩굴처럼 파고들던 나의 파란 포옹을 기억하고 있어?
네가 가는 길마다 꽃잎으로 수놓을 수만 있다면
온갖 화원의 꽃 도둑이 될 수도 있었고
너를 너의 꿈결로 바래다줄 수만 있다면
다음 생까지도 난 너를 내 등에 업힐 수 있었어
새벽에 가만스레 읊조리던 기도의 끝엔
항상 너와 내가 영여코 끊을 수 없는
오색의 밧줄로 감기는 세계가 존재하곤 했지
Y야
너의 살굿빛 피부에 잠을 자던 솜털을 사랑했고
눈동자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을 사랑했고
너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을 사랑했고
교실 창밖에서 불어오던 꽃가루를 사랑했고
너의 웃음, 너의 눈매, 너의 콧날과 목선을 사랑했어
다음 생에는 내가 너를 가져갈게
나만의 Y
다음 생에는 내가 너를 가져갈게/서덕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 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 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때에
당신은 살아 있구나, 눈치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 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 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안지은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야
하도 오래되어서 언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
그 어디서도 나는 없어
학교에도 학원에도 버스에도 집에도 나는 없어
혹시나 해서 찾아가 본 분실물 보관소에도 나는 없었어
그렇다고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야
출석을 부를 때 분명히 ‘예’하고 대답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거든
하지만 그뿐 그 어디에도 나는 없어
부탁이야, 어디서든 나를 보면 곧장 연락 좀 해 줘
잘 타일러서 보내 줘
바다도 보여 주고
영화도 보여 주고
맛있는 것도 실컷 좀 사 먹여서 보내 줘
암튼, 하고 싶다는 거 다 해 줘서라도 꼭 좀 내 몸한테 돌려보내 줘
우연히라도 나를 보거든 꼭 좀 연락해 줘, 후사할게
오래된 건망증/박성우

딱 한 번만 숨 쉬고 싶어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거야
고요한 평화는 또 다른 죽음이었어
구석진 곳에 차갑게 방치된 채
내가 나를 보지 못한 날들이 뿌옇게 쌓였어
더듬이를 잃은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자궁 속인지 무덤 속인지 모를 이곳에서
나,
붉게 물들인 시간이 녹슬어 바닥까지 번졌어
한때 내 안에도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어
지금 하얀 포말 같은 언어들이 딱딱하게 굳어 가
나를 깨우고 싶어
누군가의 손길에 세차게 흔들리고 싶어
나를 잠근 안전핀을 뽑고
내 안을 확인하고 싶어
나만을 태울 수 있는 불길을 만나
한순간의 뜨거움을 향해 확
나를 쏟아 버리고 싶어
딱 한 번만 숨 쉬고 싶어
소화기/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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