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극장, 과부가 된 아버지
김언희
아버지, 새빨간
페티큐어를 하고, 아이,
꽃만 보면 소름이 져요, 허리를
꼬는 아버지, 과부가
된 아버지,
생리중인 아버지,
시뻘건 아버지의 음부, 아버지의
질, 하룻밤의 여든여덟 체위로
내 남자와
하는,
빗자루 손잡이와 그짓을 하고, 자동차 뒷자리에서 스무 켤레의 구두와 하고, 유리상자 속에서 왕뱀과 동거를 하는,
아버지이, 아버지의 목청으로 부르르 나를
부르는 아버지

나는 오직 나만을 사랑했다 2
박상순
나는 오직 너만을 사랑했다. 너는 내 한 눈에 바늘을 꽂고 오보에를 불었다. 내 눈 속에 오보에가 담겼다. 바늘이 떨고…… 너는 나의 목에 황금빛 올가미를 씌웠다. 바늘 뒤에 숨어서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오직 너만을 사랑했다. 네 젓가락이 아직 남은 내 한눈을 뚷고 들어와, 내 뜨거운 눈동자가 너에게 파먹힐 수 있다면, 나의 껍질, 나의 무덤. 그 속의 내 뻐들을 모두 걷어, 네 손 아래 한 그릇 도시락이 되어서 네 목에도 황금빛 올가미를 씌우고 너는 하나, 나는 둘…… 너는 한 덩이 무덤을 갖고 나는 두 덩이 무덤 되어 물병 속의 물처럼, 물병 속의 물처럼…… 썩은 아이 하나 낳고 썩는 아이 둘을 낳아 도시락에 질질질, 네 꿈결에 질질질, 내 슬픔에 질질질…… 하! 나는 하나, 너는 둘 올가미를 셀 텐데. 끝내 너는 도시락을 덮고 내 무덤에 자물쇠를 채우고 창밖의 누군가를 위하여 오보에를 불었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4년 뒤
박상순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우체국 뒷길을 맴돌다
수챗구멍 속에서 나온
개구리 한 마리를 밟아 죽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미는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어떻게 먹고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기 전에
내 귀여운 방에게 말했습니다
- 나는 거미가 되고
너는 거대한 개구리가 될 거야
그리고 나는 불을 질렀습니다

방
장정일
방이 하나면
근친상간의 소문을 무릅쓰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지낸다. 아니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
진짜 근친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방이 하나면
쌀통 위에
책꽂이를 얹는다. 그리고
교과서의 줄을 잘 맞추어둔다
어머니, 책더미 위에는 더 무엇을 얹어야 방이
넓어질까요?
방이 하나면
벽마다 잔뜩 대못을 치고
비에 젖은 옷을 걸어 말린다
개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집터가 왜 이 모양일까
하고서
방이 하나면
세상이 우리 식구에게 빌려주는
방이 하나면
아들의 친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가거나 방문 밖에
새우잠을 잔다. 친구 곁에
아들도 잔다. 찬 서리에 젖으며
두 사람은 꿈속에서 익사한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몰래
한 이불 덮을 수는 없겠지
방이 하나면
어린 연인들은 여관을 찾아
떠다니리. 손목을 잡고
어슥하게 떠다니리
방이 하나면
방이 하나면……
아아 !
나는 사람도 아니다.

도시의 등불
허수경
헤이, 아가씨, 오늘 나랑 같이 갈까
고향 오래비처럼 안아줄게 꽃 한 송이
사줄까 밥 한끼 먹여줄까 겁내지 마
그리고 제발 울지 마
기차가 지나가는 어디쯤 방을 잡을까
이틀쯤 잠잘 곳이었음……
살 속에 환한 배추꽃 무꽃 이대로
아편같이 시름 없이 아편같이 꿈 없이
아흐,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아가씨, 가서 돌곱창이라도 구울까
내 손수건이라도 줄까
손수건은 너무 더러워, 아흐 어쩌다가
아가씨 울지 마, 고향 오래비처럼 안아줄게
볼에 따스한 입술을 대어줄게 그 브래지어 끈 좀
안으로 집어넣어 그 슈미즈도 치마 속으로 넣고
날 울리지 마 제발, 철새 같은 이농의 경부선 같은 날 울리지 마
제발 다리를 오므리고 울어 오즘 눌래?
자 이리 와 여기쯤 와서 내가 지켜줄게
그러고 어디 기차가 지나는 곳쯤 방을 잡고 나는 너를
재우고, 고향 오래비처럼 오줌을 누고 싶어
오줌 줄기의 포물선, 포물선의 고요함, 그리고
쓰러져 잠 속의 시름
눈꼬리에 눈물을 담고 고요함 속에 잠겨
뿌리로 돌아가는 그 고요함 히힛, 고향의
누이처럼 코를 고는 너 곁에서

나를 당신 것이라
-1986. 세월에 대한 기억
허수경
나를 당신 것이라 부르지 말아요.
술국을 푸던 손이 내 탯줄을 끊었죠
낯선 남자 살을 헤비던 손이
나의 배내피를 닦았어요
어제 죽은 이도 마시던 물
저자 뒤란 개철쭉 흐드러진 우물이
난생 처음 저의 비린 몸을 헹구었구요
처음 울 때부터 저잣거리 술 쩔어
속은 데 많은 바람 시퍼런 손아귀가
온몸 핏줄 바람살 드난살이 골에 새겼죠
저문 산길 채이는 밤서리 밟으며
저자 천덕꾸러기 재실이가 내 탯줄을 묻었는데요,
내 탯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여도가 꽃종이 접던 도가꾼 오줌 기운에
썩고
또 썩고 있지요

詩
허수경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찍어라
찍힌 허리로 이만큼 왔다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또 찍어라
또 찍힌 허리로 밥상을 챙긴다
비린 생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도 먹고
드러눕고

5 월
장석남
아는가,
찬밥에 말아먹는 사랑을
치한처럼 봄이 오고
봄의 상처인 꽃과
꽃의 흉터로 남는 열매
앵두나무가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앵두꽃잎을 내밀 듯
세월의 흉터인 우리들
요즘 근황은
사랑을 물말아먹고
헛간처럼 일어서
서튼 봄볓을 받는다

나에게 온통 젖어버리는
장석남
썰물에서 눈을 만났다
눈을 만나 어깨가 다 젖었다
눈에 어깨를 잃고, 마음은 썰물을 따라가고
바람이 불었다
눈보라 나를 싸안고 썰물 위로 걸었다
비명을 참으며 몸 뒤채는 파도들
곁에
오래 있기 아팠으나
……오래도록
나를 데리러 오는 길은 없다
나에게 온통 젖어버리는 눈보라

그리운 시냇가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그집 앞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김언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박상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사진, 텀블러
90년대 한국시인들의 시중 가지고 있는 시집에서 몇 개씩 뽑아봤습니다.
+시는 언어가 아닙니다. 사전적의미로 느끼려고 해서는 그 시의 '진실'을 볼 수 없답니다.
꼭 예뻐야 꽃이 아닌 것처럼, 꼭 예뻐야 시가 아니에요.
이 시들은 아주 처절하고 슬픈 시들 이랍니다.
시의 표면을 보지 말고 이면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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