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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7/16) 게시물이에요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인스티즈


박해옥, 들국화 연가

 

 

 

칡넝쿨 병사들이 돌격태세로 치오르는

잡풀 무성한 북향 받이 언덕

눈부신 미사보자락 사운 대며

하늘 향해 두 손 모은

청년예수의 순결한 신부여

 

여기도 삶의 적진이라서

무지한 손길들이 서슴없이 목을 조으지만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고통 없는 사랑이 어찌 아름답겠는가

얼룩하나 없이 하얗게 웃네

 

손때 묻은 모조품이 아닌

스스로 머금었던 결에 의한 아름다움이여

사랑을 알기 전엔

저들을 꽃으로만 보았더니

, 청절(淸節) 의 꽃이여

이제서야 비로소 거룩한 사랑을 배웠네

 

감격해 울고 난 듯 가슴이 촉촉하다

연보랏빛 영혼 곁에

마음에 얹혀있던 짐을 부린다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인스티즈


구재기,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그냥 걷는 길가에서

하늘을 본다

움푹 패인 곳마다

물은 깊은 호수로 고이고

그 속에 하늘이 내려와 있음을 본다

 

매일매일 하늘을 굽어보면서

길을 걷는다

 

아무리 굽어보아도

높은 하늘인 것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을

 

그대여, 사랑은 그렇게

매일 걷는 나의 길가에 있다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인스티즈


박제천, 오늘은 내가 당신이 되는 날

 

 

 

한 마음의 열두 가지 지옥을 다 비우는

오늘은 내가 당신이 되는 날

 

한 물줄기의 수만 물방울이 하나같이 반짝이는

오늘은 당신이 분수가 되는 날

 

푸르름의 목어, 눈부심의 풍경 다 내어 건

향기로운 절 한 채 지어서

마음이 추운 이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오늘은 당신이 집이 되는 날

 

하찮은 돌멩이나 풀줄기, 꾸겨진 종이장 하나에까지

햇빛의 광명을 가득 채워

숨쉬게 하는

오늘은 당신이 내가 되는 날

 

한 마음의 열두 가지 생각을

한 생각으로 바꾸어

 

오늘은 내 안을 텅 비우는 날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인스티즈


용혜원, 나도 파도칠 수 있을까

 

 

 

바람이 바다에

목청껏 소리쳐 놓으면

파도가 거세게 친다

 

나는 살아오며 제대로 소리지르지

못한 것만 같은데

바람을 힘입어 소리지르는 바다

 

해변가에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돌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폭풍우 몰아치듯

살고 싶다는 것은

내 마음에 욕망이

불붙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에도

거친 바람이 불어와

목청을 행구고 지나가면

세상을 향해 나도 파도칠 수 있을까

 

늘 파도에 시달려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소리치고 싶은

열정이 남아있는 탓일까

 

갯바람을 쐬면

도시에서 온 나는

갯적은 소리를 내고 싶어진다

세상을 향해 나도 파도치고 싶어진다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인스티즈


천양희,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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