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방학이 되면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신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 괜찮았지만
방학 중에는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두기 신경 쓰인다는
엄마 아빠의 이유였다.
난 혼자 있어도 전혀 상관없었지만.
하지만 더는 집에 혼자 있다고
신경이 쓰이지 않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난 방학이 시작하면 짐을 싸고서
혼자서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갔다.
늘 잘해주는 할아버지도 보고 싶었고
오감으로 그때의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그 곳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방학에만 만날 수 있는
그 애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1. 여진구
이곳의 버스는
유난히 엔진 소리가 시끄러웠다.
탈탈거리며 달리는 버스의 창밖에는
푸른 나무들과 익숙한 푸른 밭이 보였다.
어서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죄송하게도 난 해가 지기 전에
빨리 그 애의 얼굴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
처음 할아버지 집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싫었다.
풍겨오는 지독한 거름 냄새도,
툭 하면 튀어나오는 벌레들도 싫었다.
엄마 아빠가 나를 남겨두고 떠날 때면
꼭 버려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밭에 일하러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혼자 빈 집을 지켜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시원한 마루에 누워
집에서 챙겨 온 책을 읽다가
그마저도 지겨워져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며 세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여왔다.
나와 같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벌떡 일어나
마당 쪽을 바라보자
나와 비슷한 또래의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 작은 품에
커다란 수박을 안고 있었다.
" ...이거 할아버지 갖다드리라고. "
아무 말 없이 자기를 쳐다보자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앉아 있는 마루까지 다가와
힘겹게 수박을 내려놓고는
다시 뒤돌아 마당을 빠져나가려 했다.
난 그런 그 애를 부르며
걸어가는 발을 붙잡았다.
다행히 내 목소리에
그 애는 뒤를 돌아보았다.
" 나랑 같이 놀지 않을래? "
-
그 애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근처의 계곡이었다.
산의 정상에서부터 내려온 계곡물은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자
발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물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 애는 내 옆의
커다란 돌멩이 위에 앉았다.
나도 그 애를 따라
돌멩이 위에 앉았다.
햇빛을 받아 뜨거웠지만
발을 담그고 있는 계곡물이 차가워 괜찮았다.
함께 발로 물장구를 치며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 애는 나와 동갑이었고
할아버지의 옆 옆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참을 물장구치며 놀다
다시 그 애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을 땐
할아버지가 집에 없는 나를
걱정하며 찾고 계셨다.
" 우리 내일도 같이 놀자! "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애에게 소리쳤다.
그 애는 다시 뒤를 돌아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고
난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세어보지 않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그 애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놀러가주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엔
그 애처럼 내 피부도 햇볕에 그을려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
아빠의 차를 타기 전
마중을 나와 준 그 애에게 인사를 했다.
그 애는 내가 그간 본 표정 중에
가장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또 놀러와. "
" 응. 매년 놀러 올 거야. "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처음 이곳에 올 때와 비슷했지만
그렇게나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한참을 달리다
한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아주 작은 버스정류장이었다.
다시 탈탈거리며 버스가 떠나고
엔진 소리 대신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이곳에 올 때면
챙이 넓은 모자와 선크림이 필수였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짐을 내려놓은 뒤
곧장 그 애의 집으로 달려갔다.
" 버스정류장에 너 마중 나간다고 갔는데.
길이 엇갈렸나 보네! "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전혀 찝찝하지 않았다.
의자도 없는 작은 정류장 앞에
그때보다 많이 커버린 그 애가 보였다.
![[고르기] 방학이면 만나던 남자아이 고르기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1/30/9/8/7/9873de628e5a429d1ea24683e5442cb6.gif)
혹여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버릴까
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니
다행히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작년보다 더 키가 자란 것 같았다.
" 길이 엇갈렸었나 봐. "
가까이 다가가 말하자
그 애는 손으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고르기] 방학이면 만나던 남자아이 고르기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1/30/e/4/3/e43f0f35e8059bc02a0525d6b9747f7c.gif)
" 그러게. 잘못하면 밤새도록 기다릴 뻔했다. "
2. 임시완
할아버지의 집은 산속이었는데,
내가 찾아갈 때면
푸른 잎들은 보이지 않고
흰 눈이 온 산을 덮고 있었다.
처음 할아버지의 집에 갔을 땐
원래 사는 집보다 훨씬 추웠지만
좋아하는 눈이 가득해서
신이 났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항상 나를 절에 데리고 가주셨다.
할아버지의 집과는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야 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도
다시 한참 산을 타야 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절 역시 늘 하얀 눈이 가득 덮여있어
본래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안에 들어가
오랜 시간 절을 하시는 동안
지루한 나는 절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러다 거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어떤 스님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절의 입구 쪽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돌계단 위에 앉아있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이곳에서 사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서 내 또래의 아이를 처음 본 나는
곧장 그 애의 옆으로 다가갔다.
" 옆에 앉아도 돼? "
그 애는 깜짝 놀라며 나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눈처럼 하얀 얼굴과 대비되게
입술과 코끝 그리고 뺨이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옆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산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온통 흰색뿐이었고
저 멀리 새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가만히 경치만 구경하다가
바닥에 있는 눈을 손으로 뭉쳤다.
눈 뭉치가 주먹만 한 크기가 되고
바닥에 이리저리 굴리자
할아버지의 주먹만 한 크기가 됐다.
그 애는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나를 따라 자기도 눈을 굴렸다.
주먹만 했던 눈이
내 몸집만큼 커졌고
내 것보다 조금 작은 그 애의 눈덩이를
그 위에 올렸다.
작은 돌멩이로 눈, 코, 입을 만들어주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어주자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어느새 그 애와 나는 서로 웃으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이제 집에 가자며 내 손을 잡으셨다.
" 내년 오늘에도 올 테니까 너도 꼭 와야 해!
다시 만나자! "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며 그 애에게 말했다.
그 애의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겨울 방학이 찾아오기 전까지
나 혼자만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겨울 방학이 오고
작년과 같은 날, 다시 그 절을 찾았을 때
또 그 애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매년 그 애와 그 절에서 만날 때마다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었다.
물론 그다음에 올때면
작년에 만든 눈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겨울 방학이 되기 몇 개월 남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늘 나를 예뻐해 주시던 할아버지였기에
너무나도 슬펐다.
할아버지는 영혼은 순환하는 것이라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으로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떠올릴 때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조차
함부로 뽑아버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기에
겨울 방학이 되어도
더 이상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다.
당연히 그 절에 갈 일도 없었다.
그리고 점점 내 머릿속에서 그 애는 잊혀갔다.
그러다 시골에 내려가지 않은 지
벌써 몇 년째가 되는 해의 겨울.
정말 갑자기. 문득 그 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년 그 절에 오던 그 애가
아직도 그 절을 찾아올까 궁금해졌다.
난 정말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기차의 표를 끊었다.
그 애와 절에서 만나던
그 날짜에 맞춰서 말이다.
-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지만
그때 보았던 풍경을 보자
내 머리는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 덕에 그 절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 높은 산을 오르는 건
여전히 너무나 힘들었다.
절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눈마저도.
그 애와 같이 앉았던 돌계단에 앉았다.
거기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기억 속의 풍경과 똑같았다.
" 옆에 앉아도 돼? "
![[고르기] 방학이면 만나던 남자아이 고르기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1/30/3/0/b/30be09bcca00a64d5801f5cf1dbd3715.gif)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기억 속 그 분위기와 웃음이
그때와 너무나도 똑같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하긴 했지만
정말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고개를 끄덕이자 내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 모습이 겹쳐보였다가
금세 사라져버렸다.
![[고르기] 방학이면 만나던 남자아이 고르기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1/30/5/1/a/51ac4c2f560a8f370a90f5e6b891dccf.gif)
" 오랜만이야. 드디어 다시 만났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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