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고삐 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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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316, 망향 (No Way To Go Home)

나 떠난 후에도 저 술들은 남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겠지
나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술에 취해
몸은 땅에 가장 가까이 닿고
마음은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아
허공 속을 몽롱하게 출렁이겠지
혀끝에 타오르는 불로
아무렇게나 사랑을 고백하고
술 깨고 난 후의 쓸쓸함으로
시를 쓰겠지,
나 떠난 후에도
꿀 같은 죄와 악마들은 남아
거리를 비틀거리며
오늘 나처럼 슬프게 돌아다니겠지
누군가 또 떠나겠지
문정희, 나 떠난 후에도

내 무덤 앞에서 눈물짓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불고,
눈송이가 되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햇빛이 되어 익은 곡식 위를 비추고,
가을비 되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서 깨어 날 때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조용한
새의 날갯짓이에요.
밤하늘에 빛나는 따뜻한 별이에요.
내 무덤 앞에서 눈물짓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이름 없는 인디언의 시, 나의 무덤 앞에서

덤불 우거지고 잡풀 웃자라
이 골이 저 골 같고 저 골이 이 골 같아서
도무지 찾을 길 없는 길을
아버지는 어찌 알고 저리 수이 오르시는가
덤불 우거지고 잡풀 웃자라
표식도 없고 비석도 없어
도무지 경계 없는 무덤을
아버지는 어찌 알고 저리 수이 찾으시는가
-아버진 어찌 그리, 길도 무덤도 잘 찾으요?
-늙으면 저승길이 환해지는 법이다
우거진 덤불과 웃자란 잡풀들
아버지, 낫으로 베어낼 때마다
조금씩 환해지는
알몸의 길이여
알몸의 무덤이여
박제영, 저승길이 환해질 때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오스트리에서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는다.
이탈리아를 지나면
스위스가 나타나고
프랑스가 나타난다.
그래, 그렇지.
이승의 국경을 넘으면
거기에도
나라는 있겠지.
호반이 있고
새들 지저귀는
숲이 있고
마을이 있겠지.
손광세, 국경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 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는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이별가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신 오진 못하는 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서정주, 귀촉도

한때는 우주 끝까지 갔단다.
사랑했던 여인
한봄의 산 나무 뿌리에서
뜻 아니한 십 센티쯤의 뱁 새끼같이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이젠
나는 좀 잠자야겠다.
천상병, 간 봄

그냥 그대로
죽고 싶을 때가 있다.
더 이상을 바라지 않을 시간,
더 이하를 바라지 않을 시간에
그대로 멈춰,
꽃잎처럼 하르르 마르고 싶을 때가 있다.
이수익, 꽃잎처럼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조병화,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죽음을 소재로 한 시들 모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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