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육(1580~1658)
조선중기에 태어난 김육
13세에 임진왜란 발발
그즈음 부모를 모두 여의고 가난한 생활을 합니다
27세 성균관 유생
하지만 서인이었던 그가 대북파 광해군정권에서 할수있는것이 없었기에 가평에서 은거하게 됩니다
굴을 파서 지내다 겨우 초라한 초가집에 의탁합니다
낮에는 나무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하던 그에게 인조반정으로 벼슬길이 열리게 됩니다
왕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않은 강직한 성격탓에 인조의 눈밖에 나 관직을 삭탈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내 인조의 부름을 받고 여러관직을 두루두루 역임하고 중국사행 체험으로 중국의 선진 문물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노력합니다
중국에서 귀국한 김육은 충청도관잘사가 되어
각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없애기위해 토지1결당 12백미를 납부하게 하는 대동법에 목숨을 걸기로 합니다
당대 기득권층에게 엄청난 반발을 받고 김육은 집중 공격을 받게 되는 위기를 마지했지만 때마침 효종의 등극과 함께 김육은 좌의정에 제수됩니다
강력한 힘을 얻은 김육은 마침내 호서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게 만듭니다
그의 평생 꿈이었던 전라도에서의 대동법은 이루지못고 생을 마감하지만
곧바로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대동법이 시행되며 대동법의 전국화가 탄력을 받게 됩니다
대동법은 망하기일보직전의 조선을 200년이 넘게 살아남게 만든 결정적 계혁으로 보는 시선이 많죠.
대동법이 시행되고 전국에정착하기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으니까요... 그까짓 세금줄인다는것인데...
본인이 양반이고 기득권이면서 백성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모습에서 공무원의 참모습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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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의사인줄 알았으니까 문제는 없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