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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9/19) 게시물이에요







 꽃은 소리없이 핀다 | 인스티즈


이진수, 꽃은 소리없이 핀다

 

 

 

저 빗방울 소리

사이, 텅 빈 것들이

모여 꽃이 되는 거다

 

침묵은 가벼이 소란 떨지 않는다







 꽃은 소리없이 핀다 | 인스티즈


손창기, 화문(花紋)

 

 

 

국화빵 가게는 겨울에도 꽃이 핀다

비닐 하우스엔 폐타이어 몇 개 동여 놓고

이슬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있다

아내와 교대를 하는 남편이

먼저 피어난 반만큼의 화로에서

활짝 핀 꽃들 손가락으로 말해 주었다

모든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저 손가락들

덜 핀 꽃들 온기 뒤집어 주라고

꽃잎 스칠 땐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말 못하는 목젖 아래에도

꽃문양이 새겨질 수 있다는 걸

하얀 봉지 안에 수북이 담아온 국화빵

그 향기로 뜨끈하게 전해온다

조금 전 마이너스 통장 금액 연장으로

아내와 난 마음 하나 맞추지 못하고

실랑이질 벌이다가 문득

사내가 디디고 간 자리마다 꽃무늬 보도블럭이

마구 구워져 나오는 걸 보며 한겨울

 

땅속에도 분명히 연탄불이 있을 것이라고

함께 고개 끄덕였다







 꽃은 소리없이 핀다 | 인스티즈


강민숙,

 

 

 

못 하나 뽑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를

못을 뽑아본 사람은 안다

 

장도리와 망치 불끈 들고

못의 목을

겨누어 뽑아본 사람은

못의 흔적

그 휑한 자리를 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못의 자리

사람이 못이었음을 안다

 

언제가 한번은 뽑히고 말

그 자리에

나는 오늘

내 삶의 외투를 건다







 꽃은 소리없이 핀다 | 인스티즈


장옥관, 걷는다는 것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 다닐 대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다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꽃은 소리없이 핀다 | 인스티즈


천종숙, 바뀐 신발

 

 

 

잠시 벗어둔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내 신발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닳아있는 신발 뒤축에서

타인의 길이 읽혔다

똑같은 길을 놓고 누가

내 길을 신고 가버린 것이다

늘 직선으로 오가던 길에서

궤도를 이탈해 보지 않은 내 신발과

휘어진 비탈길이거나 빗물 고인 질펀한 길도

거침없이 걸었을 타인의 신발은

기울기부터 달랐다

삶의 질곡에 따라

길의 가파름과 평탄함이

신발의 각도를 달리 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길

나는 간신히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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