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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340
이 글은 8년 전 (2017/9/22) 게시물이에요



임진전쟁은 여러모로 상당히 흥미로운 전쟁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동북아의 정치-경제적 
판세가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거니와 동북아 3국이 모두 참전한 역사상 
예를 얼마 찾아보기 힘든 전쟁이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나라 군대가 
격돌하는 과정에서 군사학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들이 생겨났지요. 

다 아시는 노가리 잡설은 그만 까도록 하고_-_ 

아래 토론글에서 [전략설계]님께서 <망치와 모루>의 예를 들어가시며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모루와 망치의 비유는 [전투]가 아닌 [전쟁]에 대입 하기에는 매우 
추상적인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임진 전쟁당시 일본군의 작전양태를 가장 압축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종심집중]입니다. 
[블리츠크릭]그러니까 전격전과 비슷한 개념을 가진 방식이지요. 선발대는 재빨리 진격하여 
진격로를 열며 간혹 자신의 힘으로 부족한 방어거점은 후발대에게 맡기고 우회진격, 빠른시간 
내에 적의 종심을 관통함으로 지휘부를 마비시키는 방식이지요. 

임진년 4월 상륙직후 일본군의 전략은 이러했습니다. 1군과 2군의 고니시와 가토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히데요시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습니다만) 각기 부산에서 
평양성,함경도 북변 국경지대 까지 그야말로 번이 진격했지요. 이 점은 너무 나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한 조선군의 전투방식은 어떤것으로 표현할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종심방어]라는 말 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고 봅니다. 날카로운 창(종심집중)은 
두꺼운 모래주머니 조차 가볍게 뚫어버릴수 있을지 몰라도 두꺼운 모래주머니가 2개 3개 수도 
없이 버틴다면 결국 창날의 날카로움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이치처럼 전쟁내내 조선군은 
끈질기게 버티어 내었습니다. 

물론 초기에 국방의식 해이에 면죄부를 발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우리는 기습과 병력의 집중운용이 가지는 이점 또한 깍아내려서는 않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 조선군이 어느 정도 훈련되고 전쟁에 대비가 된 군대였더라도 그와 같은 
일본군의 초반작전에 쓸려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2차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전투처럼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 육군은 병력, 병사의 훈련도나 
중화기들이 부족해서 패한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면에서는 우세하기도 하였지요. 

그만큼 기습과 병력의 집중운용이 가지는 이점은 대단한것 입니다. 

조선군이 취한 종심방어의 구체적인 양태는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견벽-청야작전, 민병대 봉기, 연락선-보급선 차단, 후방교란 등등이지요. 

사실 임란 초전 당시 평양성 까지 치고 올라간 일본군의 점령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부산과 평양을 잊는 길다란 축선의 형태였지요. 전라도, 강원도, 충청 서해안지방,경상우도등의 
지역은 일본군의 직접적 공격목표에서 비켜 났습니다.일본군의 전략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지방을 집적거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병력의 분산을 부르고 병력의 
분산은 병력 집중이라는 종심집중의 기본적 원칙에 위배 되니 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조선군의 전략인 종심방어는 <모루와 망치>의 비유처럼 일대 회전이나 정면 
대결로 단기 전략을 도모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앞서말한 다양한 형태의 작전을 
통해 적군을 괴롭히고 출혈을 강요하는 것이지요. 

역시나 일본군의 치명적인 실패원인은 이런 조선군의 종심방어에 휘말려 들어가 후방을 
굳히는데 실패했다는 점 입니다. 전라도는 어떻게 먹어볼라고 찝적거리다 판판이 깨지고 
바닷길이건 육지길이건 보급로는 거진 다 막히고 그런 이유로 일본군들은 타국의 땅에서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야 됬지요-_- 

사실 이 한반도 땅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에서 침략군이 직면했던 문제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문제는 평양성까지 진격한 일본군의 전격전 능력이 사실상 동이 났다는 점 입니다. 
이는 당시 1군의 주장이었던 고니시가 주화파였던 점도 작용하지만 그보다는 앞서 말한 
후방불안정, 바다에서의 패배 그리고 보급의 한계가 크게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밑에 리플로도 달았습니다만 당시 일본군은 여름이 다지나가고 겨울이 올때가지 동계전투복도 
제대로 배급받지 못했으며 육로로 죽어라 실어나른 식량은 의병때문에 허-_-벌나게 많이 붙인 
호위대가 다 파먹어 오히려 호위대가 내려갈때 고니시에게 식량을 달라고 손 벌릴 정도였으니 
까요. 조선에 투항한 항왜의 대부분 또한 [굶주림]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가토의 2군은 그 당시 까지 해유령이나 해창정에서 조선군을 깨부수며 북진하고 있었 
습니다만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가토가 안전지대에서도 완전무장에 스스로 먹을 쌀과 된장을 지니고 다녔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는 물론 [매사에 조심하며 솔선수범하는 장수]라는 식으로도 풀이되는 일화입니다만 끝도 
없는 조선군의 기습작전으로 인해 불안한 전선과 보급불량이 가토에게 그러한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고 해석할수도 있는 일화입니다. 

이런 전선의 고착 상황에서 명군이 참전을 합니다. 

명군의 평양성 3차 공략전이 있기전에 가토는 이미 함경도 일대에서 축출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고니시는 평양성에 틀어 박힌체 한 겨울에 하계전투복을 입은체 얼고 굶은 병사들을 
데리고 수성전을 펼치는 꽤나 한심한 상황이었지요.(이는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히틀러 만큼이나 
현 위치 사수를 부르짖던 히데요시가 만들어낸 상황이기도 합니다) 

물론 명군을 무조건 깍아내리는 건 아닙니다. 

대국의 직접 참전, 수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의 존재가 일본군에게 얼마나 압박감으로 작용 
했겠습니까? 평양성 전투에서는 명군은 다수의 장수들이 부상을 입어 가면서도 전투를 계속해 
일본군을 을밀대 까지 밀어 붙이는 감투정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더 알아야 합니다. 

고니시의 일본 제 1군은 을밀대 까지 밀린 절망적인 포위상황에서 어떻게 벗어 났을까요? 

이 의문의 정답은 [이여송과 고니시간의 협상]에 있습니다. 

즉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그러니 퇴로를 차단하지 마라]라는 다분히 중국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타국 군대의 한계가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와서 피를 
흘려가며 싸울 필요가 없는 군대의 한계라는 겁니다. 

이런 양상은 명군이 참전한 이래 계속 반복됩니다. 군사적 방식보다는 정치적 타협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명군의 한계랄까요. 여기에 명군 장수들의 개인적인 부패까지 겹치면서 명군은 
일본군에게 뇌물을 받고 조선군의 공격을 억제 시키는 등 조선군으로 하여금 번번히 승리와 
전과확대의 기회를 놓치게 하는 모습을 모여줍니다. 

여기에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휴전과 심유경이라는 협잡꾼이 끼어든 이상한 휴전회담은 
어처구니가 없기에는 짝이 없지요. 멀쩡한 나라의 4도를 띠어달라는 히데요시의 요구는 자신을 
일본왕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으로 바뀌고 명나라 황제는 좋다고 도장 찍어주고 히데요시는 
[너 일본 오야 하3]하는 식의 국서를 듣다가는 길길이 날뛰고-_- 

이런식으로 눈가리고 아웅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삽질을 하는 
와중에 일본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쳐들어 왔으니 그게 바로 정유재란입니다. 

지지부진 말도 많고 얘기도 늘어지는 데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명군은 전투에 앞장서기 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조선군의 전의를 오히려 꺽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명군의 횡포는 자주 언급 되는것이지요.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는 [왜군은 얼래빗 
명군은 참빗]으로 통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 것입니다. 조선의 관리마저 명군의 일개 장수가 
목에 밧줄을 걸어 피를 토할때까지 말로 끌고 다니는[명나라 군복만 입고 있으면 무슨짓을 
해도 말릴 수가 없었던]그런 횡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 군대가 횡포를 부리던 뭘 하던 조선군 대신 일본군을 주먹으로 팍팍 쓰다듬어 
주었느냐? 그런것도 아닙니다. 명군 단독 출격(승패여하를 막론하고)이 공식적으로 8회였다는 
수치도 뒷받침 하지만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은 벽제관에서 야코 한방 먹은후 전투를 피하기 
급급했다거나 사천신성 전투에서 불량기포 오폭에 출성공격을 감행하는 일본군에게 깨작살이 
났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많이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존재 자체로 그게 어디냐?>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명군은 어떤면에서는 존재 자체로 일본군 뿐만 아니라 조선군에게도 부담 되었습니다. 
바로 명군의 보급까지 조선이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지요. 원래는 명군이 본토로 부터 보급도 
받을 계획이었습니다만 썩을대로 썩은 명나라의 보급체계가 이를 어그러 트렸습니다. 

군량관들이 쌀에 물을 부어 분량을 늘린후 빼돌리고 운송관들이 또 더 부어서 빼돌리고 결국 
전장에 도착한 쌀을 썩어서 말도 먹지 않는 지경이 되고 이를 조선인 해운업자에게 물리니 
해운업자들은 도산하거나 도망가고 결국은 조선인 부역을 통해 육로로 실어나르다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혹독한 노역을 이기지 못해 쓰러져 나가고, 이런 폐단을 감시하러온 명나라 
군량 감독관은 군량관이나 운송관들과 짜고서 쌀을 더 빼돌려 먹기에 바쁘고-_-; 

결국은 조선이 군량을 부담, 가뜩이나 부족한 군량이 더 부족해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임진년 이듬해인 계사년 당시 편제상 전국에 17만 가량을 동원할수 있었던(물론 의병과 
관군의 구분은 상당히 모호했습니다만) 조선이 정유년에는 1만을 조금 넘게 동원할수 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군량 부족을 문제로 이미 모집한 의병조차 해산 시킬수 
없었던 의병장들의 기록 또한 이 시기에 다수 발견 되지요. 

이제까지 쓸모없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저는 명군을 무조건 깍아내려 조선군을 띄우자는 무뇌한 짓은 하자는게 아닙니다 -_-ㅋ 

명군들 중에서도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또 그 중 일부는 전쟁이 끝난후에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습니다. 명군의 대일본 전술이라고 할수있는 절강병법은 전쟁이 
끝난후로도 조선군의 훈련체계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허.나. 

<명군이 우리나라 도와줘서 이겼3. 관군은 허수아비고 의병이 게릴라 전이 고작이3> 
하는식의 의견과 말들은 말입니다. 

자신의 정권강화를 위해 그 무엇이던 희생시키던-국방까지- 선조의 

<천병이 와서 우리가 살았3. 명군 만쉐이~ 만쉐이~>하며 

일개 명나라 장수에게 버선발로 달려 나가 절하던, 자신의 정치적 책임회피를 위한  
물타기 수작, 선조의 그야말로 정치적 쌩쇼에 놀아나는 일과 동급이란 말입니다-_-; 

조선군은 그냥 들러리,허수아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당한 승리의 주역이었습니다. 

(물론 상처뿐인 영광이지만 말입니다_-_) 



역사란 언제 어디를 막론하고 뚜껑을 열어다보면 어디나 복잡하게 엉켜있는 법 입니다만 

<동북아 3국 버라이어티 쑈쑈쑈> -초특급 이벤트- 였던 임진전쟁은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특히나 더더욱 복잡하게 그 구도가 헝크러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리저리 재보는 조심스러움을 잊지 말아야 겠지요. 


ps. 

조선군의 기본적인 방어체계는 바로 진관체제였습니다. 진관체제가 무엇이냐? 진관체제는 
바로 면방어의 개념에 기반을 둔 체제지요. 즉 당시 병사들의 대부분은 그지역에서 땅 파먹고 
사는 농민이었던 만큼 종 울리면 냉큼 무기들고 동사무소로 뛰어가는 것이지요. 

이런식으로 [향토방위]시스템을 구축하여 

웬만한 놈은 두두려서 쪼가 보내고, 덩어리가 좀 큰 놈은 몇몇 진관이 다구리 쳐서 내쫓고 
정말 덩어리 큰 놈은 몇몇 진관이 붙잡고 있는동안 중앙군을 파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시스템이건 단점은 없는 법입니다. 

진관체제는 우선 각개격파의 위험이 있고 조선 중기처럼 병사들의 주력인 자영농민들이 
몰락하고 군정이 문란해지면 아예 작동을 않해버리는 단점이 있지요.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나온것이 바로 제승방략입니다. 

제승방략이 뭐관데? 하고 물어 보실 독자분들을 위해 잠시 디벼 보자면 . . . 


예를 들어 경상도에 왜구가 한 2000명쯤 상륙해서 설치고 다닌다면 말입니다. 


조정에서 명령이 나갑니다. 

-어~ 거그~ 경상좌도에 있는 병력들은 XX에 집결해라아~ 

그럼 경상좌도 일대의 수령과 현감들은 집결지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그럼 조정에서는 
집결된 병력을 지휘할만한 지휘관을 중앙에서 파견해 보내었지요. 

중앙에서 파견한 지휘관이 집결된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인수 인계하면 그때부터 왜구와 
[맞짱]이 시작됩니다. 종래의 면방어 체계인 진관체제와는 확연히 다른 시스템이지요. 

얼핏보면 각개격파도 당할 위험도 줄어들고많은수의 병사를 모아서 중앙장수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침공한 적과 단기결전을 노려 볼 수도 있어 좋아보입니다만 

물론 여기도 아주 심각한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중앙에서 장수가 파견되 지휘권을 완전히 인수인계 받기 전까지는 집결지에 모인 많은 
병사들이 수만 많지 군대라고 부르기는 어정쩡한 물건이 되버린다는 점입니다. 

왜냐고요?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위계질서입니다. 위계질서는 지휘체계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병사들을 끌고 집결지로 모인 지방장수들은 하나같이 품계가 비슷비슷 하다는 
점입니다. 현감이나 수령. 끽해야 동장이나 잘 쳐줘야 시장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당연히 고만고만 도토리 키재기인 상황에서 지휘권이 성립할리가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적군이 들이닥치면 난리가 나는겁니다. 

물론 지방수령들이 서로 양보하고 일치단결해서 대항한다면 . . . 
이라고 좋게 좋게 생각 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사람 사는데 결단코 그런 상황이 오기는 쉽지 않죠. 

적이 들이닥쳤는데 누구는 여기서 결판을 내자고 하고 누구는 군사를 뒤로 물려 수성전을 
펼치자 하고 누구는 슬금슬금 도망가자카면 그날로 군대가 아작나기 쉽상입니다-_- 

통신망이 발달한 지금도 이런 비교적 정교한 작전은 아구를 맞추기가 힘듭니다. 
하물며 옛날에는 어떠하였을까요. 역시나 제승방략의 한계이겠지요. 

실제로 임란 당시 이일과 신립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장수 기다리다 비오고 쌀 떨어지고 하니 병력의 상당 부분이 흐지부지 녹아내리기도 했지요. 

뭐 사실 임란 초기의 패배도 이런데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국방시스템의 베이직은 진관체제로 잡아 놓고서 나중에 군정이 문란해지니 제도를 기본적으로 
수정하거나 군정의 문란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위에 진관체제라는 병력을 집중 
시키는 전략을 임시 땜빵으로 붙여놨으니까요. 

차다리 트럭운전법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편이 낳을지도 모릅니다_-_ 


에 . . . 또 얘기가 길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킁; 


임란당시 조선군의 기본전략은 방어선을 치고치고 또치는 종심방어라는 것입죠=ㅅ=(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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