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생을 사랑하는 걸 취미로 삼은 사람이었다. 본 영화도 읽은 책도 들은 음악도 많지 않았지만 사랑만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했다. 어느 날 고통에 못 이긴 듯 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아. 병이야. 그러나 내가 너의 병이 된 적은 없었다. 너의 병이 나만은 비껴갔다. 나는 이것을 두고두고 서운했다.
이희주, 환상통
그대가 젖어있는 것 같은데 비를 맞은 것 같은데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노을 앞에서 온갖 구멍 다 틀어막고 사는 일이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허연, 내가 나비라는 생각
가장 불온하고 멋진 배신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자유를 배신하고 법치주의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고 지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사랑 자체를 배신한다. 사랑은 나 스스로 만든 환상을 깨뜨려서 나 자신까지도 배신한다. 사랑에서 환상을 깨는 것이 배신의 역할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쌔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우리가 헤어진건 다른 이유는 없었어.
그냥 우리가 덜 사랑했던거 덜 절실했던거 그거지.
너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생각해봐.
우리가 사는게 사막이고 내가 물한 컵이었다면 네가 나를 버렸을것같아?
은희경, 헤어진 후
너는 내가 마저 태우지 못하는 담배 같았고, 내팽개칠 수 없는 손길이었고, 날 지독히 따라오는 달빛이었고, 등질 수 없는 햇빛이었어. 최대치의 행운이 너였고, 최고치의 불행은 너의 부재였어. 사랑해.
백가희, (제목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