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시인
시인 M이 뚱뚱한 것은 고독을 과식한 탓이다
슬픔을 쉴 새 없이 갉아먹은 탓이다
자유는 혼탁하고 말에는 고통이 섞여 있어
동굴 속에서 홀로를 파먹은 탓이다
시인 M은 관념으로 꽉 찬 기형의 머리를
늘 의자에 앉히고 의자와 함께 늙어 간다
탱자 가시처럼 날카로운 편견과 편애로
폭양과 폭력에 항거하며
사철 빙벽 속에 산다
그러므로 뚱뚱한 시인 M을
권력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비칠거리는 두루미나
일생 동안 여당(與黨)만 하는 목이 긴 당나귀 따위나
시시하게 세련된 기린 족속과 비교해선 안 된다
나는 나쁜 시인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민중 시인 K는 유럽을 돌며
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
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고백컨데
나는 유럽을 돌며
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목숨의 아름다움과 허무
시간 속의 모든 사랑의 가변에
목이 메었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지.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성벽을 바라보며
오래 그 속에 빠지고만 싶었지.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곤도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
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
몸을 떨었어.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
꿈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 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끈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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