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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7/9/29) 게시물이에요










 나는 중독자였다 | 인스티즈


장지성, 꽃 진 자리

 

 

 

한 송이 꽃잎에도

내홍이 없었으랴

그 다툼, 시샘들은

지천으로 풀어 놓고

아 진정

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낙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독자였다 | 인스티즈


이수정, 기다림

 

 

 

숲은 옥상에 세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집

긴 계단을 걸어

문을 열 때도

닫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숲은 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면

길다란 가지들이

백 갈래의 가지를 뻗고

천 갈래의 뿌리를 내립니다

 

숲은 숨 죽이고

세들어 있습니다만

잎사귀들이 자꾸만 달싹이고 반짝입니다

잎들이 나는 연습을 합니다

숲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있습니다

 

잎사귀들은 벌써

나는 연습을 마쳤습니다

빛나는 사과를 따듯

당신이 허공에서 잎을 따낼 때까지

잎사귀들은 배회하고 다닐 것입니다

외로운 섬이 갈매기를 띄우듯이

이젠 잎을 날려야 하나 봅니다







 나는 중독자였다 | 인스티즈


함민복,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다

 

 

 

달리는 기차로 별 떼를 옮겨 보았니

잘했다

 

열리지 않는 앞에서 별을 울었어

잘했다

 

별 볼 시간도 없이 숨 사이 숨 사이 살았지

잘했다

 

사라져 가는 별에 눈감아 어둠 바쳐 보았는감

잘했다

 

자 이제 너는

죽어

 

별의 더 빛나는 몸뚱이

어둠이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중독자였다 | 인스티즈


조은, 그의 별

 

 

 

그는 산을 올랐다

뜨거운 눈물 항아리를

혹처럼 지고 갔다

그는 자주 멈춰 하늘을 봤고

바늘처럼 그림자를 찔러 대는

빛살도 응시했다

산에서는 그가 사는 도시가

한 송이 가시연꽃처럼 보였다

모퉁이를 돌 때 그의

두 눈이 역광 속에서 빛났다

같이 가던 사람이 눈물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감격이야!” 했다

 

그는 그 하루에

바라보던 별에

성큼 다가갔다







 나는 중독자였다 | 인스티즈


마경덕, 슬픔을 버리다

 

 

 

나는 중독자였다

끊을 수 있으면 끊어봐라, 사랑이 큰소리쳤다

네 이름에 걸려 번번이 넘어졌다

공인된 마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문 앞을 서성이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나오면

목덜미로 빗물이 흘렀다

전봇대를 껴안고 소리치면

빗소리가 나를 지워버렸다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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