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직전에 '정온'이란 넘이 삼첩진(三疊陳)을 주장합니다. 임란 이후 조총 운용전술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이 많은데 가장 중요한게 바로 이 정온의 삼첩진입니다.
정온이 말한 삼첩진의 대형은 기본적으로 변형된 학익진에 가까운데, 전체적인 포진 형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종별 배치와 운용방식입니다.
방포대 1000 방포대 1000 방포대 1000
방포대 1000
사대 3000
살수 1000
편군 1000
기사 3000
대략 이런 모양이 됩니다.
* 방포대는 화약무기, 특히 조총부대를 의미하고 사대는 보병 궁수입니다. 살수는 칼이나 창 등 단병기를 운용하는 보병입니다. 편군은 편곤을 든 기병, 기사는 활을 든 기병이 됩니다.
* 방포대 전면에는 능철이나 거마책 등 대기병 장애물을 설치합니다.
* 방포대는 모두 중행(重行), 다시말해 두줄로 서는데 앞에 사람이 앉아서 쏘고 나서 뒤로 가서 재장전할 동안 뒷 사람이 쏘는 방식입니다.
* 방포대의 사격이 끝나면 사대가 활을 쏘게 되어 있습니다. 활을 쏘는 거리는 적이 45보까지 접근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적의 공격이 저지되면 편군과 기사가 출동해서 적과 합전(合戰)하거나 적의 핵심부대(중견)에 돌격(치돌)하거나 혹은 매복해서 적의 후퇴로(귀로)를 차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살수가 조금 약한듯하고 측면 공격에 취약한 등 약점이 없지 않지만 이 정도면 조선시대 진법 중에서 그나마 실전 감각이 있는 편입니다.
제가 특히 흥미를 느끼는 점은 정온의 경력상 이런 군대에 관해서 설을 풀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유생이고 광해군대부터 입바른 소리로 명성을 날리는 전형적인 글쟁이입니다.
다시말해 정온의 경력이나 행적으로 보아 정온의 머리 속에서 이런 진형이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겁니다.
함경도쪽 지방관으로 잠깐 근무한 경력이 있긴한데 평소 이 사람 행적으로 보아 이렇게까지 군대 운용에 관심이 많았을까하는 의심도 듭니다. 이때 조선군에는 한교의 '조련도식'이나 평안도에서 나온 '군장정구' 같은 병법서 밖에 없을 때니 정형화된 조선 진법서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넘이 이런 구체적인 병종 운용법을 정온의 머리 속에 주입시켰을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조총 도입 이후 우리나라 전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삼첩진설은 너무나도 중요한데 그 발전 과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야기죠. '증보문헌비고'에선 얼도당토않게 중국 송나라 오린 장군의 '첩진설'을 들먹이는데 이건 분명히 정온의 삼첩진하고는 연결할 구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선조-광해군-인조대의 진법 관련 논쟁에 정온의 삼첩진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도 없습니다. 전후 과정도 없이 상당히 완성된 형태의 새로운 진법이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하간 조선후기의 진법 중에 그나마 실전 감각에서 상위 클래스인 이 진법이 조선 후기에 어떤 식으로 전승됐는지도 앞으로 연구해볼 과제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검토해 본바론 '속병장도설'이나 '병학통'의 진형도 정온의 삼첩진하고 일치하는 진법은 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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