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원결의 [桃園結義]
유비(왼쪽), 관우(가운데), 장비(오른쪽)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중국 원과 명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되었다.


삼고초려 [三顧草廬]
유비(왼쪽)가 제갈량(오른쪽)을 만나기 위해 세번이나 초가집을 방문한 것을 이르는 말로,
지극한 예절로 어진 사람이나 유능한 인재를 초빙한다는 의미.
후한 말, 삼국시대에 촉한의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군사를 일으켰다.
관우와 장비는 매우 강한 군사를 가졌으나 이를 지혜롭게 활용할 책사가 없어 늘 조조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제갈량의 식견이 매우 높고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이를 무례하게 여긴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함에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다시 방문하였고,
결국 제갈량을 만나 그를 책사로 들일 수 있었다.
이후 제갈량은 유비의 책사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와룡봉추 [臥龍鳳雛]
누운 용과 봉황의 는 뜻으로,
누운 용은 풍운을 만나 하늘로 올라 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봉황의 새끼는 장차 자라서 반드시 봉황이 되므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을 비유해 이르는 말,
또는 우열을 가릴수 없을만큼 뛰어난 두 사람을 이를때 쓰는 말.


계륵 [鷄肋]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밤 늦게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온 부하에게 조조(왼쪽)는 그저 계륵이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부하는 돌아가 막료들과 계륵이 무슨 뜻인지 상의하였으나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부로 있던 양수(오른쪽)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에서 한중 땅이 계륵과 마찬가지로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인데,
과연 그의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양수는 재능을 믿고 오만한 인물로 묘사되며,
조조의 심기를 여러 차례 건드린 끝에 계륵 사건을 계기로 군심을 소요하게 한 죄목으로 참수되었다.
다른 정사에서는 조조가 한중에서 철수한 지 몇 달 뒤에 양수가 군기를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괄목상대 [刮目相對]
윗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
이 말은 《삼국지》 오지〉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왕 손권(왼쪽)이 그의 장수 여몽(가운데)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을
나무라자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다.
후에 노숙(오른쪽)이 찾아가 전과 달라진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워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합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하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으로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생각보다 부쩍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이며
훗날 여몽은 노숙의 후임으로 촉나라의 관우를 공격해 형주정벌에 성공하는 명장이된다.


읍참마속 [泣斬馬謖]
제 1차 북벌때 가정의 전투 책임자로 임명한 마속(오른쪽)이 제갈량(왼쪽)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를 가져왔다.
마속은 우수한 장수요, 제갈량과는 문경지교를 맺은 마량의 아우였지만
제갈량은 한중으로 돌아오자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 뒤 장병들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장관이 제갈량을 보고
"앞으로 천하를 평정하려 하는 이때에 마속 같은 유능한 인재를 없앴다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
하고 말하자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손무가 싸워 항상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군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전쟁을 시작한 처음부터 군율을 무시하게 되면 어떻게 적을 평정할 수 있겠는가?"
라고 대답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신하를 법대로 처단하여 질서를 바로잡음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왕좌지재 [王佐之才]
'왕을 도울 만한 재능'라는 뜻으로,
임금을 보좌하여 큰 공을 세울 능력을 가진 인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왼쪽)를 도와 중원 통일의 기틀을 다진 순욱(오른쪽)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순욱은 자신의 고향이 병란에 휩싸이게 될 것을 알고 가족들을 이끌고 기주로 갔다.
기주를 장악한 원소는 순욱을 예우하였으나, 순욱은 원소가 큰 일을 이룰 인물이 못됨을 알아보고
조조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순욱을 수하에 두게 된
조조는 "자방(子房)을 얻었다"며 기뻐하였다.
자방은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장량의 자이다.


고육지책 [苦肉之策]
제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라고도 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장면에 등장하는 일화로 후한말 승상 조조가
오를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적벽강을 사이에 두고
오군과 유비군의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주유(왼쪽)는 조조의 대군을 적은 숫자로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때 오군의 노장 황개(오른쪽)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조에 투항하고 거짓정보를 제공한다.
제갈량의 계책으로 동남풍이 불던 날 황개는 항복하는 척하며
불붙은 배들을 조조군으로 보내 조조군의 병력에 치명타를 가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때 황개가 자신의 몸을 희생해 조조를 속인 것이 바로 고육지계이다.


난공불락 [難攻不落]
제갈량(왼쪽)이 학소(오른쪽)가 수비하는 진창성에서 '난공불락의 성이로다' 하며
탄식하며 물러나게 된 계기로 사용된 말로
공격하기 어려워 쉽게 함락되지 않은 성을 일컫는 말이다.
제갈량이 제2차 북벌에서 진창성으로 향하기 조금 전에,
그는 위의 도독 사마의의 추천으로 진창 방위사령관이 된다.
학소는 성의 해자를 깊게 파고 망루를 높여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 공방전은 <삼국지연의>의 후반을 장식하는 장렬한 서사시였다.
사다리차에 대해서는 불화살로 맞섰고, 충차의 돌격은 투석으로 막았으며,
지하도 작전에 대해서는 옆으로 참호를 파서 끊어놓는 등
촉이 공격을 시작한지 20일이 지나도록 진창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수어지교 [水魚之交]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왼쪽)와 제갈량(오른쪽)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
《삼국지》 <제갈량전>을 보면,
유비와 제갈 량과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친밀하여지는 것을 관우와 장비가 불평하자,
유비가 그들을 불러 “나에게 공명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도록 하게(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라고 타일렀다.
이리하여 관우와 장비는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미 [白眉]
백미는 흰 눈썹이란 뜻이다.
제갈량, 즉 제갈공명(왼쪽)과도 친교를 맺었던 마량(오른쪽)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는 모두 자에 상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이라 일컬었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즉,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던 것이다.
이 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백미라 부른다.
《삼국지》 <촉지 마량전에 그 유래가 전한다.


칠종칠금 [七縱七擒]
제갈량(왼쪽)이 맹획(오른쪽)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도 한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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