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쏭은 예쁜 구두가 자기것인지 몰랐다.
효진의 남자가 벨에포크를 휩쓸고 간 뒤에도
아마 자기가 예쁜 구두를 신은 문효진을 질투해 거짓말 한 거라는 가설마저 세웠다.
예쁜 구두는 그 신발의 주인이 좀더 여성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게 한다.
추행의 대상을 고를 때의 한관영의 눈빛.
성폭력이 성적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면
아마도 그는 예쁜 구두의 주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뒤탈이 없을 허름한 운동화의 소녀를 택했다.
효진은 나이로도 성별으로도 사회적 위치로도 철저한 약자였고 예쁜 구두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쏭을 추행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신발 하나로 효진을 쏭보다 더한 약자로 간주해 추행의 대상으로 삼은 한관영의 행동이 철저히 강자로서 약자를 짓밟는 폭력임을 보여준다.
쏭은 자신이 그 악행으로부터 벗어난 이유를 은연 중 깨달았을 것이다.
그 구두는 쏭이 그날 처음 신은 것이었다. 한관영의 악행이 그 전날 일어났다면?
쏭의 신발은 바꾸기 직전의 허름한 상태였을 것이고 효진과의 차별점이 생기지 않는다.
그 피해자가 나일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 구두가 소름끼치게 증명하고 있기에 그녀는 그 구두를 버렸다.
흔히 예쁜 구두를 신어서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피해자가 여성성을 드러내는 바람에 성폭력에 노출됬다는 식의 논리에 이 드라마 속 예쁜 구두는 정면으로 대항한다.
한관영이 본인보다 약자에게.. 약자 중에서도 더 약자에게 악행과 폭력을 저지른 파렴치한이며 그 순간 쏭도 효진도.. 그 날 새 구두를 신기지 않은 효진의 엄마 그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그 구두가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성폭력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 사회 속 한관영 같은 악마가 희생자를 어떻게 물색하는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덧씌울 책임이란 건 없고 오직 가해자의 악랄하고 비열한 폭력성이 원인임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왜 늦게 다녔어? 왜 인적 뜸한 길로 다녔어? 왜 그렇게 입었어? 라는 질문으로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세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예쁜 구두가 보여준 진실이 똑똑히 알려주고 있다.
청시 갤 보다가 공감가서 가져옴

인스티즈앱
나만 아는 시엄마의 역겨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