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하나와 두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분배해야 공정한 것일까.

반으로 자르는 게 공정하다고 할 것이다.

근데 한 사람의 몸무게는 80kg, 한 사람의 몸무게는 40kg일 때
반으로 자르는 게 공정한 것일까.
아니면 2/3, 1/3로 자르는 게 공정한 것일까.
아니면 절대적인 신이 나타나 대신 공정하게 잘라주길 기다려야 할까.

한 명이 자르고 자르지 않은 한 명이 고르는 것이
절대적인 공정은 아니지만 용인될 수 있는 공정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빵을 자르는 사람이 빵을 공정한 상태에 가깝게 자르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빵 하나를 나누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한 사회의 부는 어떻게 나눌까. 절대적인 신이 나타나 분배해주길 기다려야 할까.
한 사회의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할 때
어떤 방법이 우리 사회의 부가 더 늘어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가장 많은 자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일까라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경제학자이고 그것의 결론 중 하나는 시장경제이다.

전투조를 편성하고 머리띠를 매고 혁명의 구호를 외치면서
죽창을 들고 길거리에 나선다고 해서 그런 상태가 오진 않는다.
이러한 잘못된 방법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자유로운 사회여야 되겠다. 집단주의적 사회.
개개인이 평등한 자유로운 사회여야 한다.
평등이란 결과적인 평등이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평등이다.

미친 사람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여선 안 된다.

개인의 경제적 선택까지도 자유롭게 보장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이
그나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해이다.
그것이 천국의 해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3명이 있을 때 한 사람이 빵을 만들었는데.
2명이 힘을 합쳐서 빵을 만든 1명의 팔을 꺽어서 빵을 뺏어 먹으면
빵을 만들었던 한 사람은 다시는 빵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공정하지도 않다.

3명이 공정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은
2명이 빵을 만든 1명에게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다.
적정한 가격의 지불은 빵을 만드는 1명이 지속적으로 빵을 만들게 만들고
동시에 3명은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때 3명은 모두 만족할 수 있다.

여기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있다.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누가 가져야 맞는 것일까.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질 자격을 가진 자는 누구일까.

그것을 가져야 할 사람이 그것을 갖는 것이 정의다.
자격이 없는 자가 그것을 가져가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부모를 잘 만나 권력을 가진 김정은 같은 자가
가져간다는 것은 불의하다.

부자라는 이유로 가져 가서도 되는가?

아니면 바이올린을 가장 잘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져가야 하는가?

가장 잘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져야 한다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한 개 밖에 없는데
많은 연주자가 내가 최고로 연주를 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주장하면 누구에게 줘야 할까.

그렇다면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심사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부터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또 누가 심사해서 뽑아야 할까.

그래서 대부분 공산주의 국가는 국가 커뮤니티를 만든다.
선정 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회에서 어떤 배우를 선정해서 인민배우라고 칭한다.
근데 그 위원회는 신처럼 행동할 것인가?
절대적인 지식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신이라고 하더라도 아침에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와
자기 직전 짜증나 죽겠는데 들을 때하고 다를 것이다.
어떤 연주자는 앞부분 5분 정도를 잘 연주하고
어떤 연주자는 1시간 연주하다가 그 뒤에 발동이 걸려서 기가 막히게 연주할 때 그것을 다 들어줄 수 있을까.

축구조차도 학연, 혈연, 지연에 연연하는 나라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지기 위해 각 대학교 음대출신끼리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누가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커뮤니티를 누가 장악하냐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져서 되겠는가. 연주를 가장 잘 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면 우리는 "맞아~"라고 얘기를 하지만
막상 누가 가장 자격있는 자인지 선정할 수 있는 과정이 무엇인가로 들어가면 답하지 못 한다.

과연 부자가 가지는 게 틀린 것인까?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하나 만들어졌다.
부자가 10억을 주고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A에게 주고 연주를 시킨다.
그리고 그는 후원자로써 멋지게 차려입고 연주회에 간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부자가 "짜식 최고의 연주자는 B야"라며 15억을 주고 더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서 b에게 줘서 연주를 시킨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부자는 "얘들이 바이올린이 뭔지 몰라. 최고의 연주자는 C야!"라며 20억을 주고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서 C에게 주고 연주를 시킨다.
부자들끼리 폼 나는 경쟁이 시작된다. 누가 더 우아하게 좋은 연주자를 후원하고 있는지 경쟁하고 있다.
그로 인해 오늘 밤에도 내일 밤에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좋은 악기를 든 수 없이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무엇이 이 밤에 그토록 많은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무엇이 연주자들이 그토록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를 하게 만드는가?
국가가 빼앗아서 한 명을 선정해 주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오히려 훨씬 많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나오게 되고 훨씬 많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게 많이 만들어져서 점차 점차 가격이 떨어져서
누구라도 꽤 괜찮은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어떤 부자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져가는 것을 굉장히 못 견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게 해서 점차 점차 바이올린 가격은 싸지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인스티즈앱
아직도 사망자가 계속 발생중인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