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
사랑한다는 말에는 정말 의미가 있는지를 보고싶어, 한번은 애인 H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1. H와 내가 함께 술집에 들어간다
2. H가 골라준 사람에게 다가간다
3. 정말 아무 의미없이 낯선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4. H는그것을 묵묵히 보고 느낀 감정을 후에 말한다
총 4개의 단계를 가진 간단하고도 무서운 실험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갖게 된 된 이유는 간단했다.
실험자 역할인 나는 사랑이라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피실험자 H는 그것이 단순한 시니피앙에 불과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란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인식할 뿐이고,
내가 거짓된 사랑을 말한다면 자신은 어떻게든 괜찮다고 말했다.
번화가 구석진 곳에 한 술집에 들어갔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있었고, H가 따라 들어왔다.
H와 나 모두가 처음 가보는 술집이었다. H가 내게 문자했다.
혼자 바에 앉아있는 정장을 입은 낯선이에게 다가가라는 말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이모티콘 하나없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정갈한 텍스트였다.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에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실험자과 피실험자
그리고 표본1 모두가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H가 지켜보는 바로 그 앞에서,
바들거리는 손을 숨긴 채 낯선 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누군가를 꼬시는 데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어서였을까
"왜 혼자 계신지 물어봐도 돼요?" 라는 말이 내가 표본 1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사랑해실험 #2탄
"글쎄요, 오늘은 어쩌다 혼자네요" >
표본1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접근은 성공적이었다.
실험자(나)는 목표인 "사랑해" 라는 말의 개연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표본1에게 열심히 추파를 던졌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 때 실험자가 극도로 긴장한 탓일 것이다.
아마도, 어디에 사냐는 말 따위나 이곳에 자주오냐는 그런 참 쓸모 없는 질문들이나 했겠지.
실험자는 누군가를 꼬셔내는 스킬이 엄청나게 떨어지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피실험자 H는 실험자인 나와 표본1의 뒤에서 위스키를 물처럼 들이키며 긴장한 티를 내고 있었다.
표본1은 수상하게 자신의 쪽을 힐끔거리는 H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외로운 밤 자신에게 접근한 젊은 여성 실험자(그에게는 실험자가 아니지만)에게
독한 집중을 하고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자와 표본1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는 실험자가 진토닉을 3잔쯤 먹었을 쯤이었다.
실험자는 표본1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적당히 취해 눈을 쳐다보는 일이 수월했다.
그 순간 일평생 느껴보지 못한 큰 죄책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이 실험을 그만두라며 나의 목 뒤에 크게 튀어나온 뼈를 탕! 하고 망치로 두들긴 느낌이었다.
거기서라도 실험을 그만뒀어야 했다.
"있잖아요, 이상한 말이지만 저 그쪽 사랑하는 것 같아요." >
아뿔싸, 실험을 시작 해버리고 말았다.

#사랑해실험 #3탄
죄책감의 근원을 알 수 없었다.
실험자가 사랑해라는 말 자체의 에너지를 너무나 믿고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추측만을 하고있다.
오늘이 밤 사랑을 믿고있을지도 모르는 한 인격체에게 거짓 사랑을 고백 해야한다.
그리고 진짜 사랑하는 이는 나의 뒤에 앉아 그것을 지켜본다는 (그것이 설사 허락 된 말일지라도) 사실은
실험자에게 낯선이를 마주하는 것보다 큰 두려움이 된다.
실험자는 하필 뼛속까지 "사랑해" 라는 말의 의미를 믿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인간이 어떠한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에너지라는 게 있지 않은가!
딱부러질듯 몽매한 생각은 막연히도 사랑스러웠고 이 실험의 윤활제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하게도
"저도 제가 이상해 보이는 거 아는데요, 근데 이거 사랑인 것 같아요!
저 그쪽한테 첫 눈에 반한 것 같아요! 혹시 사랑해봤어요? "
첫 도둑질을 어려워하지 두번째 도둑질에는 겁을 내지 않는다.
실험자는 거짓 사랑 고백에 죄책감을 가진 사람치고 너무도 쉽게 두번째 거짓말을 했다.
표본1은 두번째 사랑고백을 듣고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꽤 고운 피부와 그에 대조되는 뾰족한 눈매와 코를 가진 그가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
그가 실험자를 믿기 전까지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도
방금의 사랑고백을 들은 후에는 사랑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지가 서로 부딪혀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 때 표본이 실험자를 이상한 사람 보듯 쏘아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오래토록 생각하고 있다.
실험자는 두번째 질문 이후 실험에 완전히 집중하였다.
(실험 노트 1. 첫번째 사랑고백에서는 맹세코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째 사랑고백을 함과 동시에 실험자는 표본1에게 무언가 훅! 하는 감정을 느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피실험자인 H와 이별하기 전까지 표본1에게
잠시나마 흔들렸다는 사실을 실험자는 단 한번도 고백한 적 없다.)
표본1의 표정과 말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표본1은 사랑에 빠지기에 꽤 근사한 모습이었다.
H와 비교되는 큰 키, 캐주얼 한 모습으로 나를 만나던 H와 비교되는 단정한 정장,
그에 맞게 다듬은 머리, 값이 나가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아보이는 시계,
낮은 목소리 톤, 웃을 때 보이는 입동굴과 가지런한 치아 아아 또.....
내가 그렇게 표본1에게 빠져들고 있을 때 피실험자H는 큰 소리로 위스키를 한잔 더 주문했다.
평소 술을 잘 하지 못하던 H는 그 때 술을 마셔야만 하는 충동을 느꼈다고 후에 불문으로 기록했다.
"그쪽은 사랑을 믿으시나봐요?"
표본1이 실험의 근간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졌다.
그 때 H는 새 위스키 잔을 받아 들었다.
나는 페북에서 봤으니 페북 <안솔티>
잠안오는 밤 읽기좋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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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스캔들 작가님 뭐하고 사시나 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