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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8/1/13) 게시물이에요

세종대왕 때는 연 10%, 월 3%로 금리 제한하기도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지난 2002년 우리나라 대부업법에서 규정한 최고 금리 상한은 연 66%였다. 이후 2007년 49%, 2014년 34.9%로 꾸준히 내려간 최고금리는 지난해 3월 27.9%까지 떨어졌다. 그렇지만 66% 이자율에 대한 공포를 기억하는 서민들은 여전히 많다.

이 66%란 높은 이자율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진 금리다. 삼국시대엔 장리(長利)라 하여 곡식을 춘궁기에 빌려주고 추수철에 받아내는데 이 장리의 금리가 연 66%였다. 당시엔 춘궁기와 추수철 사이의 9개월을 기한으로 50%의 금리로 곡식을 빌려줬으니 12개월로 환산하면 66.66%가 된다. 화폐가 민간에 정착되기 이전이었지만 곡식을 매개로 하는 고리대는 대단히 활발히 전개됐다.

조선시대 노비계약서. 채무로 인해 노비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사진=우리역사넷)


이 살인적인 이자율은 수많은 농민들을 노비계급으로 추락시키는 원흉이 됐다. 사회적 문제가 끊이질 않았지만 삼국시대와 통일 이후 신라 사회의 동요로 좀체 손을 대지 못하다가 처음 법적인 조치가 시작된 것은 서기 980년, 고려 경종 때의 일이었다. 이때 최고금리는 66%의 절반인 33%로 제한됐으며 2년 후에는 이자가 원금을 초과할 수 없게 하는 '자모정식법(子母停息法)'도 제정됐다.

하지만 이런 법률들은 당시의 행정적 한계에 의해 지방 곳곳으로 퍼지진 못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군현의 대부분이 중앙관리가 파견되지 못해 향리들이 운영하다보니 지방관아는 물론 사찰들까지 고리대사업에 뛰어들곤 했다. 지방에서 이로 인해 민란이 일어나면 일시적인 빚 탕감 조치가 내려졌지만 그때뿐이었다. 1170년 무신정권의 성립과 뒤이은 사회혼란이 200년 넘게 지속되면서 기존에 제정된 최고금리는 물론 자모정식법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이 됐다.

최고금리를 매우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유교를 국시로 한 조선왕조는 상업, 특히 돈놀이를 매우 부정적인 사회적 악습으로 규정하고 고리대를 아예 근절시키고자 노력했다. 특히 세종대왕 시기에 이자제한법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 무조건 이자는 연간 10%를 넘을 수 없었으며 월 이자는 3%를 넘지 못한다고 못 박은 것.

이렇게 강력하게 유지되던 이자제한법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조정의 힘이 미약해지자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게 됐고 고리대가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농촌에서 가장 흔했던 이자율은 연 50%였으며 이후 월 3~10%, 즉 연 36~120%의 살인적인 고리대가 시작됐다. 이에 숙종 이후 정조 때까지 다시금 강력한 이자제한령이 내려졌다.

숙종 때는 돈이나 베는 연 2할, 곡식은 5할을 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으며 이후 영조 때 모든 상품을 매개로 한 대부업에서 이자율은 연 2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후 이 법정 최고금리 20%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법적으로는 유지됐다. 또한 이자에 대한 복리계산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기존 대출 중에는 연 33% 이자의 경우에는 3년, 50%는 2년까지만 이자를 받고 더는 받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조선말기 환곡운영이 문란해지면서 백성들의 고충이 심해졌다(사진=영화 '군도 민란의시대' 캡쳐)


이러한 제한과 더불어 18세기 조선왕조는 환곡(還穀)이라고 하는 정책 금융을 키워 어마어마한 규모로 시행했다. 환곡은 춘궁기에 농가에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철에는 무조건 10%의 이자만 받도록 하는 체제였다. 환곡이 정착되면서 기존 개인 대부업자들은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정조 말엽에 환곡의 총 규모는 1000만석이었는데 당시 조선 전체의 곡물 생산량인 연간 1800만석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한 상평곡(常平穀)이 존재했으며 2250만석 정도 규모였는데 당시 인구 4억의 중국과 1500만 남짓의 조선 사정을 고려하면 조선의 환곡 규모가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환곡은 1840년대 이후부터 세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강제 세금 성격으로 물리기 시작했으며 30%를 넘는 금리가 적용되면서 오히려 백성들을 괴롭히는 체제로 뒤바뀌고 말았다.

우리가 아는 살인적 고금리가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였다. 특히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후 일본 내의 모험자본, 사채업자들의 자금이 조선으로 흘러들면서 연 180~200%가 넘는 고금리 장사가 시작됐다. 이것이 다시 조선 후기 수준의 20%대로 돌아오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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