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궐안에 아주 큰 경사가 났습니다 ...
첫째딸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세자에게 새로운 딸이 태어났습니다
요절한 아이와는 달리, 아이는 너무나도 건강하게 잘 태어나
아기의부모님 뿐만 아니라 아기의 조부모님과 왕실,아니 온 나라의 경사였습니다
세자였던 아버지와 승휘였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정 3품 '현주' 라는 품계를 받게되고 이는 종 4품인 어머니 '승휘'보다 더 높은 품계였습니다

그러나 곧 왕실에서 두번째로 세자빈 폐출사건이 납니다
당시 세자빈이 동성애사건을 터트려 궐밖으로 쫓겨나가게 되고
세자의 유일한 자식을 낳은 승휘권씨가 세자빈에 책봉되고
현주였던 아이는 '평창군주' 라는 직호를 얻게 됩니다
( * 세자의 적녀 - 군주 / 세자의 서녀 - 현주 )


군주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일곱살이 되었고
왕이였던 할아버지와 세자였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였던 세자빈이 그만 남동생인 원손을 낳다가 산파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군주는 슬픔에 빠졌고 아내를 잃은 아버지역시 슬픔에 빠졌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잃은 어린남매를 생각하니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도 아픕니다



군주와 원손은 어머니를 대신해 유모의 품에서 자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후궁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모두 아이들을 자신들의 친자식 보다 더 아껴줬습니다

비록 어머니는 없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을 금이야옥이야 애지중지 여기는 아버지와
많은 숙부들,왕실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두 남매에게 또다른 슬픔이 닥쳤습니다
두 남매를 너무나도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그만 돌아가신 거였습니다
왕실 내명부의 기강이 흐트러졌습니다. 내명부의 최고지존인 중전도 세자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년 후 8살이였던 원손은 세손책봉을 받아 세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을 확실한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많이많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대신해 섭정을 하기 시작했고 바쁜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곧 할아버지가 돌아가실거 같다하며 열여섯살이던 군주는 곧 서둘러 혼례를 해야만 했습니다
왕실에서는 임금이 돌아가시면 삼년간 혼례를 못하게 하는 국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열다섯살에 혼인을 한다는건 이른편이 아니였습니다
삼년후면 군주의 나이는 열여덟살이 되고 혼례를 하기에는 늦은나이가 되버린셈이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딸을 위해 가장 좋은 부마감을 찾아 공주의 혼례를 치룹니다
당시 향교동이라는 가장 좋은땅에 공주에게 으리으리하게 신혼집을 지어주고 얼마안있어

그만 남매의 할아버지였던 왕이 상을 당합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허약한 아들과 나이어린 손주들이 큰 걱정이였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지존이 되고싶어 피를나눈 형제들과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였던 사람이였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또다시 그런 끔찍한 일을 할까봐 무서웠던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던 신하들에게 꼭 어린 손주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30년동안 세자시절을 보내온 아버지가 왕이되고
세손이였던 동생은 세자가 됩니다


하지만 병약했던 아버지는 재위 2년 3개월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야 맙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어린아들이 혹시 욕심많은 동생들에 의해 해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그렇게 애끓는 부정을 뒤로한채 젊은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열두살이였던 어린세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 나라의 최고지존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아주 영특했던건 둘째치고
적장자계승을 중요시했던 시대에
태어나는 동시에 원손이 되고 원손에서 세손을 거치고 세손에서 세자가 되고 세자에서 왕이되는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우애를 다졌던 남매였기에
엄마와도 같았던 누나였기에 왕이 된 후에도 사가로 나간 누나의 집에 찾았던 그날

조카의 자리를 호시탐탐 욕심내던 이 숙부가 난을 일으켰습니다

죄없는 충신들을 다 죽이고 그들의 가지 모두다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조카가 왕이 된지 겨우 3년 2개월 만에 아무잘못 없는 조카에게 갖은 위협을 다 하고
결국 조카의 자리를 찬탈해 버립니다
그토록 원하는 왕의 자리까지 올랐는데도 욕심이 끝도 없었습니다


남아있는 충신들이 분노하여 복원운동을 추진하였지만
모두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 그들도 그의가족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상왕에서 군으로 강등당한채 영월로 유배당합니다
남아있는 충신들과 숙부,매형이 복위운동을 추진하지만 이또한 실패로 돌아가고
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당하고는 열여섯이라는 어린나이에 죽임을 당합니다


공주또한 모든것을 잃고 남편과 함께 광주로 유배된후

유배지에서 미수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동생의 복위운동을 하였고 실패로 돌아가 실패하고
결국 남편은 능지처참을 당하고야 맙니다

공주또한 관노비가 되버렸습니다
공주뿐만이 아니라 공주의 아들역시 연좌제를 면하지 못하고 관노비가 되어버렸습니다
공주는 둘째아이를 가진 만삭의 몸으로 세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순천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왕족은 대역죄를 지어도 노비로 삼지 않는다는 국법이 있었으나 이를 모두 무시해버린겁니다

나중에는 잘못을 뉘우친 숙부가 공주를 면천시켜주고 그의자식들을 궐로 불러내
아내인 중전이 아이들을 친자처럼 잘 길러줍니다
공주도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이 사람을 용서할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어린 자식들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아이들을 모두 궐에 맡긴후 공주는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된후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고귀하게 태어났으나 비극적인 파란만장한 삶을 산 두 남매는 바로
조선 6대왕 단종과 그의 누이 경혜공주의 삶이였습니다




아버지인 문종이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숙부가 욕심을 내지않고 조카를 도와주고 예전처럼 보살펴줬더라면
수렴청정 할 사람이 딱 한명만 있었어도
지금 우리 후손들이 이 두남매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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