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학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문인이신 윤동주 시인의 일화로는 연희전문 문과를 지향했으나 그과정속에서 학과문제로 할아버지,아버지와의 싸움이 심했는데(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의대나 법대를 원했고, 윤동주는 문과를 고집) 밥그릇, 물그릇이 날아다닐 정도로 싸움이 심해져 보다못한 할아버지가 겨우 중재해 문과에 진학하게되었다고한다.대학생활하면서 친우이자 후배였던 욱의회고록에의하면 학교 갈 때나 사석에서 만나면 매번 옷이나 신발이 새것처럼 깨끗하고 반듯했다고 하며항상 남보다 먼저 느끼고 깊이 생각하고 무엇이든 예사로 넘기지 않았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거나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길가에 난 이상한 풀에 꽃이 피어있으면 꺾어서 단춧구멍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1년 후배인 유동식 교수의말로는 윤동주는 피부가 희고 깨끗했는데, 됨됨이 자체도 깨끗한 선비 같은 사람이며 시도 그렇지만 윤동주 자체가 맑고 깨끗한 사람이며 조용했지만 항상 미소 짓고 있었다고 한다.강처중에 따르면 소심하고 좀체 말이없는 성격에 친구가 없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의 방엔 친구들이 가득했다고 한다.낮이고 밤이고 친구들의 부름에, 산책권유에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도 별말없이 그저 묵묵히 걸었고 얼굴은 침울했다고 한다. 그도 가난했지만 항상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들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해서 항상 그의 외투와 시계는 부지런히 전당포를 드나들었다고 한다.심지어 일제의 전시물자수탈때문에 학교 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양과 맛임에도 불구하고 배고파하는 후배들에게 밥을 나눠줬다고 하며 시내에서 영화를 본 날이면 중국집에서 한잔하기도 했는데 술에 취해도 남의 뒷담화 한 일이 없었다.밤에 공부나, 시를 쓰다가 산책을 즐겨했다고 한다.밤에는 시,공부를 하다가도 산책을하며 그때마다 후배 욱을 불러서 같이 산책을 가며 욱이 5살이나 어린 후배임에도 반말을 전혀 하지 않고 '정 형' 이라 부르면서 깍듯이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윤동주가 자신의 친필 원고 1부를 욱에게 맡길 때, 표지에 '욱 형 앞' 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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