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대 세 명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보겠다며 활짝 웃으며 예비 신고식을 했던
악 소리도 없이 별똥별처럼 뛰어내린 너는
그날그날을 투신하며 살았던 거지?
발끝에 절벽을 매단 채 살았던 너는
투신할 데가 투신한 애인밖에 없었던 거지?
붉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던 물먹은 시곗줄과
어둔 강물 어디쯤에서 발을 잃어버린 신발과
새벽 난간 위에 마지막 한숨을 남겼던 너는
뛰어내리는 삶이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던 거지?
정끝별, <투신천국>
죽자고 벌인 사투의 끝은 죽음 같았다.
있는 힘을 다 뽑아낸 몸은 죽은 거나 다름 없었다.
뼈마디까지 낱낱이 헤쳐진 몸으로 까맣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이 곡기를 끊고 시나브로 제 생을 말리는
이곳은 어디인가
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세상은 구천 같다.
세월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을 울려서 눈물을 짜낸다.
사람이, 역기를 들어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
이현승, <고통의 역사>
이제 그만 혹은 이제 더는 이라고 말할 때 당신 가슴에도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그랬을까. 수면처럼 흔들리던 날들이 가라앉지도 못하고 떠다닐 때 반쯤 죽은 몸으로 도시를 걸어보았을까. 다 거짓말 같은 세상의 골목들을 더는 사랑할 수 없었을 때 미안하다고 내리는 빗방울들을 보았을까. 내리는 모든 것들이 오직 한 방향이라서 식탁에 엎드려 울었던가. 빈자리들이 많아서 또 울었을까. 미안해서 혼자 밥을 먹고, 미안해서 공을 뻥뻥 차고, 미안해서 신발을 보며 잠들었을까. 이제 뭐를 더 내려놓으라는 거냐고 나처럼 욕을 했을까.
이승희, <밑>
이제야 평온해졌어
다 망가졌는데,
삶은
살구빛이래
김하늘, <살구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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