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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년 전 (2018/2/15) 게시물이에요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인스티즈


문현미, 겨울산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세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인스티즈


서정춘,

 

 

 

범종이 울더라

벙어리로 울더라

허공에서

허공에서

 

허공은

벙어리가 울기 좋은 곳

허공 없으면

울 곳 없으리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인스티즈


함민복, 공터의 마음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인스티즈


나호열, 타인의 슬픔 1

 

 

 

문득 의자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제 풀에 주저앉았음이 틀림이 없다

견고했던 그 의자는 거듭된 눌림에도

고통의 내색을 보인 적이 없으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결합했던 못을

뱉어내버린 것이다

이미 구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생각은

쓸모가 없다

다시 의자는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태어날 때도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슬픔을 너무 오래 배웠던 탓이다







 온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 인스티즈


주경림, 큰 가시 하나 남기고

 

 

 

청어 구이를 먹는다

검푸른 등껍질 밑에서 은백색 뱃살까지

발라먹다가

그 많은 가시들을 다 골라낼 수 없어

잔가시들은 더러 삼키기도 했는데

가시 한 개가 목구멍에 걸렸다

어머니 말씀대로 밥 한 숟가락 담뿍

목이 메어져라 넘겨본다

밥 한 술에 떠밀리어 가시가 넘어간다

 

나는 밥 한 술의 힘을 신봉한다

송곳으로 찌르는 말

피할 수 없게 달겨드는 운명의 서슬이며

원인을 알 수 없이 욱신거려오는 편두통도

모두 밥 한 숟가락으로 꿀떡꿀떡 잘도 삼켜 왔다

 

이제, 큰 일 한 가지 남았는데

그새 내가 억센 가시로 자라버려

나를 통째로 삼켜버려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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