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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년 전 (2018/3/04) 게시물이에요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1898~1958??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

-의열단원에게 고하는 말-




일제강점기 당시 최고의 독립운동가

-의열단(1919), 조선 의용대(1938) 등을 조직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무장독립투쟁에 앞장선 인물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한국광복군 제 1 지대장 및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직 역임

-백범 김구와 더불어 중국 관내 독립운동의 양대산맥

-일제가 내건 가장 높은 현상금 100만원(현가치 약 320억원)의 주인공

*당시 김구의 현상금은 60만원(현가치 약 200억원)


그러나 광복후 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에게 고문...

좌우대립 속 극우세력의 테러 위협에 불안감을 느끼고 남북협상 이후 월북

월북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활동

그 이후 한국전쟁에 반대, 납북인사를 보호하고 중립화 평화통일방안을 주장하는 등 김일성과 대립각을 세우게 됨

*거기다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부정하기도 한 적이 있다...

결국 1958년,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사건'에 휘말려 사망...





1945년 12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귀국 기념사진(우측의 붉은 화살이 가리키는 인물이 김원봉)


일제 강점기 당시 백범 김구와 더불어(어쩌면 그 이상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지만 북한의 남침에 반대했음에도 월북했다는 이유로, 사회주의계 무장독립투쟁의 전설임에도 김일성 독제 체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남북한 역사학계 모두에게서 사장된 비운의 독립운동가 입니다.


그가 말년에 월북한 것에 의견들이 많은데, 최근엔 김원봉의 월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 남한은 이미 친일 경력이 있는 군경, 지주, 행정가 출신들이 득세하여 대다수의 극우정치단체들과 결탁한 상황이었습니다. 곧이어 백색테러가 만연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 속에서 김원봉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1947년 7월 19일, 김원봉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움직이던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평소 여운형을 존경하던 김원봉에게 이 사건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을 추스리고 계속 좌우합작운동에 헌신하려 노력했지만 친일파 출신의 관료들과 극우정치단체들의 위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죠.


또 한편으로는 미국이 단독선거를 통해 남한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의도가 명확해졌고,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기에 자주독립국가의 성립을 주장하는 김원봉으로서는 더 이상 남한에서 정치적 활동을 할 입지가 없어진 것이죠...






또 김원봉을 '골수 공산주의자'라고 단정짓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1926년엔 국민당의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엇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 그 후엔 국민군 장교로 임관했던 경력도 있었고(물론 이게 나중엔 김일성이 주도한 연안파 숙청사건의 명분이 되기도...) 그 후엔 저우언라이, 주더 등이 지휘한 난창봉기에 참여하는 등 잠시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1932년, 또다시 장제스(당시엔 국민당 총제)의 도움으로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치한 뒤 혁명요원을 모집, 양성합니다.

* 반공정서하면 설명을 빼놓을 수 없는 게 장제스인데... 사회주의 계열 활동경력이 있던 김원봉을 도울 이유는 사실 없어 보입니다...




조선혁명간부학교


또 1938년, 조선의용대를 조직할 때에도 국민당의 동의를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설령 이때가 중일전쟁으로 인한 국공합작 시기라고는 해도, 장제스가 중국 관내에 있는 내지인들이 아닌 조선 민족에게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 성립까지 허용할 정도로 큰 아량을 지녔을지는 의문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보면 김원봉의 항일운동은 공산당만이 아닌 국민당의 지원과 협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이외에도 김구가 김원봉의 재혼 때 직접 그의 주례를 서 주는 등 많은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도 그를 많이 따랐고 호감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여러 정황들을 고려하였을 때 김원봉을 보는 시선은 극도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라고 보는 쪽보다는 중도의 성향을 가진 '합작 주의자'로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이분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었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재조명이 조금 더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분 말고도 조명받지 못한 많은 독립운동가 선배님들도 계십니다. 그분들도 하루빨리 올바른 명예를 되찾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 인스티즈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 인스티즈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 인스티즈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 인스티즈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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