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역사에 길이 남을 슬램덩크를 보면 여러명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주인공 강백호, 원래는 주인공으로 기획되었다가 라이벌로 중간에 설정이 바뀐 서태웅, 우직한 리더 채치수, 최고의 재능을 지녔지만 2년의 허송세월이 약점이 되어버린 정대만 등이 그들입니다.
그중에서 사람들에 의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사들을 – 왼손은 거들뿐 빼고 - 남긴 것은 아무래도 불꽃남자 정대만일 겁니다.
그 대사 하나하나가 명품이기도 하거니와, 그 대사를 말하는 사람인 정대만의 인생 역정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일 겁니다. 훌륭한 재능, 극복이 불가능했던 역경, 젊은 시절의 방황, 다시금 불태우는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는 전성기의 기량 (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뛰어나지만)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지요.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정대만에게 교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말이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극복 불가능할 만큼의 역경을 겪지도 않고, 방황은 그냥 지가 하고 싶어서 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지를 다시 불태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감하는 캐릭터는 그래서 그 만화에 아주 잠시 나오는 ‘장권혁’ 이었습니다. 중학 시절에 천재 정대만에게 패배하고 누구보다도 노력하며 절치부심 3년의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고교농구에서 2년간 농구를 떠나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된 정대만을 다시 만나죠. 장권혁은 그 길었던 3년간 쌓아올린 실력으로 마침내 정대만을 패배 직전으로 몰아넣은 뒤, ‘넌 날 이길 수 없어. 고교 농구를 우습게 보지 마라’ 라고 한마디 던졌지만 이후 재능이 폭발한 정대만에게 5분만에 다섯개의 삼점슛을 내어주고는 팀 패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저 사람에게 강한 교감을 (사실 전 거기서 거의 눈물이 날 뻔 했었는데) 느꼈던 이유는, 사실은 정대만이 아니라 장권혁의 모습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때 어떤 분야에 대해 재능을 보이고 그 분야가 크게 싫지 않다면, 인생이 편합니다. 그 재능이 내가 할 일을 결정해주기 때문이죠. 근데 문제는, 그 재능을 발현하면서 해당 재능의 사회로 진출할 수록 그 사회에는 그 재능이 강한 사람이 모여있다는 점입니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면 평균 학업능력이 높아지고, 좋은 대학원으로 올라가면 다시 주변 사람들의 능력이 훨씬 좋아집니다. 음악 좋아하던 사람이 예고라도 간다 치면 더이상 내 재능은 주위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런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소위 정대만과 같은 ‘천재’ 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죠. 다만 신경학을 10년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누구나 상대성 이론, 정신분석학을 창시하진 못합니다.
장권혁과 같은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름 잘났던 자신이 평범해지는 이런 변화는 제법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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