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황홀했던 달을 띄워
당신에게 보냅니다.
당신 어딘가에 담아주세요.
시간이 약이다.
그 문구가 읽힌 밤, 나는 눈감아 변명한다.
약 없는 병도 있거든요.
/그렇게 잠든다.
초저녁 퇴근길
이른 감이 없지 않는 켜진 가로등
그 아래 거닐다, 설움이 북받치더라.
오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다정했던 건 가로등뿐이라.
/초저녁 가로등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앉았고
창밖에는 익숙한 것들이 불었다.
귀를 넘어 머릿속을 휘젓는 노랫말 중
한 구절도 무심한 게 없었다.
전부 나 죽네, 나 우네 하는데
한 구절도 내가 아닌 게 없다고.
/퇴근길 버스
당신이 스물한 살- 배가 덜 갈라졌을 때
아이엠에프가 당신의 기둥과 함께 터지기 전
머리숱은 지금과 달리 풍성하고
미간 사이가 평평했을 때
옷장 속에는 공짜로 받은 거적때기 말고
짙은 청색의 스커트와 노란 스카프가 걸려 있을
그때의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를 후회하지 않을까, 엄마.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기만 했다면
문 닫는 것을 잊고서라도 갈 수 있었다.
단지 그리웠다.
보고 싶진 않았다.
/너이던 시절이, 보고 싶었다.
나는 너를 적었는데
사람들이 시라고 부르더라.
너더러 시래
나는 시인이래.
나는 그게, 그렇게 아프다.
/시인의 시
'죽는 건 무섭지 않아. 사는 것도 그저 그래.
사실 난 너무 애매한 게,
살아있음에도 죽어간다는 거야."
/애매한 시민
무서워요.
정말 무서운 건, 내가 이걸 다시 읽을 수 있을까봐 무서워요.
[17세. 여. 추락사]
/유서
악당의 우두머리가 죽었다.
관객이 환호한다.
그 악인의 가족은 부디 귀를 막았길.
/네가 모르는 악인의 인생
어쩌면 제목을 읽은 순간,
그때부터 나는 시에 절절 기었던 것 같다.
걷는 법을 몰라 손바닥과 무릎에 불향을 내며 기어가듯
그렇게 불에 타 죽을 순 없을까, 그곳으로 기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릴 적 시
드늦은 귀갓길
전깃줄에 걸쳐 앉은 보름달이
한가로이, 내 하루 끄트머리를 관람하다
자글자글한 내 마음에 놀라지.
아침부터 찾아온 고난에 데었더니,
밤이 되니 주름뿐 남은 게 없더라.
놀란 달 바지자락을 잡고
네가 관람한 내 영화의 결말을 아느냐 묻지.
달은 저물 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오늘 같은 내일을 맞을 수밖에
동경하는 시인은 죽어도 살았고
어물쩍 살아가는 나는 살아도 죽었다.
/나의 시체, 나의 구절
너 훌쩍이는 소리가
네 어머니 귀에는 천둥소리라 하더라.
그녀를 닮은 얼굴로 서럽게 울지 마라.
/네가 어떤 딸인데 그러니
찰나의 꿈에서
영겁의 꿈으로
모든 게 꿈이라 치자
/묘비명
네가 짐작하던 그 미래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흘러.
그러니까, 감히 미래를 점치려거든
좀 거창하게 하란 말이야.
그리고
다 잘 될 거야.
잘 되더라.
/미래에서 온 편지
숙아, 너 예뻐
정말 예뻐
늘어진 배에 패인 산호초도
가닥가닥 머리칼에 피어난 안개꽃도
눈가에 우아한 주름도
너는 끔찍이 싫다지만
그거 정말 예뻐
숙아, 너는 알까
네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향보다
포근한 게 네 존재인데
숙아, 너는 부르기도 서럽다
서러워서 목이 메어
마구 불러주고 싶은데 말이야
숙아, 우리 늘 행복하다고 속여 왔잖아
이제 진짜 행복하자
부디 그러자 숙아
/2015. 여름. 엄마에게.
애쓰지 마요.
충분해요.
당신은 당신이기에,
나는 당신어야만 하기에
/그대의 그대로를 아껴요
착각은 곧잘 나를 함부로 해.
물가에 푹 담가놓기도
겨울바람에 꽁꽁 얼리기도
착각은 슬금 달짝지근하다가
결론은 늘 죽을 맛이야.
/혹시나 하는 기대의 결말
너에게 매일 해주고 싶은 인사는
잘 자. 라는 인사 말고
잘 잤어? 라는 인사야.
시작은 늘 나였으면 해.
/아침에서 기다릴게
너를 울리고 싶었다.
내가 적은 시를 읽고, 네가 실컷 젖어들길 바랐다.
나만 힘겨운 세상이 아니라고, 너도 울어주길 원했다.
/끝으로
본문에 있는 모든 시는 나선미 시인의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에서 발췌한 거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집인데 본문에 있는 거 말고도 더 좋은 시들이 많아 ! 본문에 있는 시들이 들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에 와 닿았다면 시집 읽어보는 걸 추천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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