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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년 전 (2018/6/02) 게시물이에요






 지도에 없는 집 | 인스티즈


곽효환, 지도에 없는 집

 

 

 

지도에 없는 길 하나를 만났다

엉엉 울며 혹은 치미는 눈물을 삼키고 도시로 떠난

지나간 사람들의 그림자 가득해

이제는 하루 종일 오는 이도 가는 이도 드문

한때는 차부였을지도 모를 빈 버스 정류소

 

그곳에서 멀지 않은 비포장길

지금 어디에 있다고 너 어디로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지시하던 내비게이션 소리도 멈춘 지 오래

텅 빈 인적 없는 한적함이 두려움으로 찾아드는

길섶에 두려운 마음을 접고 차를 세웠다

 

오래전 서낭신이 살았을 법한 늙은 나무를 지나

교목들이 이룬 숲에 노루 울음 가득한 여름 산길

하늘엔 잿빛 날개를 편 수리 한 쌍 낮게 날고

투명하고 차가운 개울 몇을 건너

굽이굽이 난 길이 더는 없을 법한

모퉁이를 돌아서도 한참을 더 걸은 뒤

 

고즈넉한 밭고랑

황토 짓이겨 벽 붙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곡식 창고

함석지붕을 머리에 인 처마가 깊은 집이 있다

산나물이 들풀처럼 자라는

담도 길도 경계도 인적도 없는 이곳은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도 비워낸 것 같다 그래서

 

지도에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







 지도에 없는 집 | 인스티즈


최준, 속삭임에 대하여

 

 

 

온종일 바닷가에서 놀다 돌아와

떠밀려 온 해초처럼 드러누운 밤

 

거리만큼 멀어진 파도 소리가

배갯머리에 닿아 있는 한 올 머리칼로

간지럽다

 

먼 파도 소리는

물 든 유리잔에 손 처음 대었을 때

잔의 내부에 이는 미세한 떨림

 

아슬한 우주로부터

지상의 나뭇잎에 처음 와 닿은

별빛의 모세혈관을 투과하는 속삭임

 

입 앙다문 모시조개 껍질 속으로

마술처럼 스며드는 그리움이다

 

마음 등불 하나

하나만 겨우 꺼지지 않는







 지도에 없는 집 | 인스티즈


송기원, 저녁

 

 

 

새의 그림자가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누구일까

땅거미가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은 무엇일까

붉은 옷의 승려가 사는 서녘에서는

마지막 시체가 연기를 피워 올리고

떠난다거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이미 먼 세상의 일이다

서른세 번, 망자를 거두는 종이 울리면

어렵사리 네가 붙잡은 나마저 사라진다







 지도에 없는 집 | 인스티즈


최승자, 하늘 도서관

 

 

 

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무()로서의 허()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지도에 없는 집 | 인스티즈


조인선, 빈 배 가득 허물이

 

 

 

못 갈아 손끝 찌르면 흐르는 사랑

흔적도 없이 밤이 오면 울었네

멍든 손톱에 별이 빛나고

갈라진 손바닥에 빛을 꼭 쥐면

그대는 서서히 잊혀갔네

내가 원한 건 뱀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그대뿐

더운 열망이 식는 게 두려웠지

이제 내 몸을 덮은 비늘을 벗겨

그대 눈썹에 곱게도 붙여

내 사랑 보내드리리

부디 날 모른다 하시면

아주 내 사랑 띄워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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