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 이은 앵글로 색슨사 2부입니다. 대체로 교회사를 위주로 다룬 부입니다.
9. 앞서 서술한 듯이 앵글로 색슨인들은 로마화가 없다시피한 상황이었고 로마의 유산도 타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기독교화도 매우 느린 편이었다. 서고트 왕국은 아리우스 주의지만 왕국 설립 전부터 기독교를 공인한 상태였고 프랑크 왕국은 창립자인 클로비스 1세에 의해서 기독교가 개종, 공인 되었다. 그에 비하면 앵글로 색슨 사회는 597년에 대륙에서 넘어오기 시작한 주교들에 의해서 기독교화 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브리튼에 발을 디딘 선교사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로마의 수도사였다. 그가 선교단을 이끌고 미지의 앵글로 색슨 사회에 들어간 이유는 다름 아닌 켄트의 왕인 애설베르크트가 프랑크계의 기독교인 왕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이 결혼을 기회라고 판단하고 선교단을 파견한 것이었다. 사실 이전부터 몇몇의 앵글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로마로 순례를 떠난 것 같은데 그들을 본 교황은 그들이 앵글(Angles)가 아니라 천사(Angels)라고 하는 등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던 전승을 짐작했을때 이전부터 앵글로 색슨 사회의 선교를 예정한 것 같다. 어째건 막 브리튼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먼저 켄트인들을 개종 시켰다. 켄트의 왕이 개종하자 곧이어서 그의 가신들도 개종했다. 그리곤 아우구스티누스는 왕의 후원을 기반으로 캔터베리에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최초의 앵글로 색슨 사회의 교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교회의 주교가 됬는데 이 또한 앵글로 색슨 사회의 최초의 대주교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에 대륙의 제도를 바탕으로 로체스터에 주교구를 설치했고 곧이어 이스트 앵글리아인들도 개종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옛 로마의 주요 도시였던 런던과 요크에 주교구를 설치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그의 브리튼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던 오해였고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10.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런던과 켄트 왕국 내부에는 수많은 교회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로마 선교사들의 노력은 가상하다고 할만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선교 활동은 엘리트층에만 국한되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기독교가 퍼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서술했던 앵글로 색슨 사회의 정치적 특징 때문에 선교단이 후원을 받다가 후원자가 몰락하면서 선교가 중도에 파토나기도 했다. 627년에 노섬브리아의 왕인 에드윈은 파울리누스라는 로마 선교사를 초청해서 가신들과 함께 그에게 세례를 받고 개종했다. 그런데 5년만에 에드윈이 머시아와 웨일즈 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이때 그의 뒤를 이은 왕은 기독교를 거부했고 결국 파울리누스는 노섬브리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11. 이런 상황이 지속됬다면,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밖에 불가능 했다면 어쩌면 앵글로 색슨 사회에 기독교가 자리잡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뜻밖의 선교단체가 앵글로 색슨 사회를 기독교의 일원으로 만들었으니 바로 웨일즈에서 시작된 켈트 교회다.
12. 켈트 교회는 꽤나 유서 깊다. 5세기~6세기에 브리튼인들이 앵글로 색슨인들에게 밀려나면서 웨일즈로 도망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기독교도였고 교회의 유산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웨일즈에 수도원을 세우고 기독교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들의 수도원은 대교구(Provinces)를 중심으로 했으며 교회라기보단 수도원을 다수로하는 가까운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교회는 점차 세가 커지더니 이내 아일랜드를 개종 시키는데 성공했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성 페트릭'가 여기서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선교단의 주요 일원은 주교라기보단 떠돌이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농촌에 의지하며 그들을 인도하고 목회를 개최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일랜드가 개종되고 아일랜드에도 대교구가 설치된 이후 남 픽트인들을 개종시키더니 콜롬바라는 선교사가 북 픽트인들을 개종시키므로써 스코틀랜드 전역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아일랜드 교회가 웨일즈 교회보다 주도적으로 수많은 곳에 선교단을 파견하는데 그중에서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너 섬에 자리잡았던 수도원을 중심으로 노섬브리아의 개종이 이뤄졌다.
13. 아이오너 교회는 노섬브리아의 왕의 요청으로 선교단을 보내서 영구한 개종을 성취했으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수도원들에서 계속 선교단을 파견하므로써 앵글로 색슨 사회는 점차 개종 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농촌 중심적인 개종방식은 매우 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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