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왜구 이야기가 나오면 왜구들은 고려인과 일본인의 연합이라든지 혹은 고려인이 다수고 일본인이 소수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 나는 그런 주장들이 소수인줄 알았는데, 꽤나 널리 퍼진 모양이다. 왜구 이야기를 다룬 국내의 몇몇 인문 역사 도서들에서도 그런 식의 내용들이 실린 걸 보고 놀랐다.
나름대로 고려사를 공부한 내 입장에서 그런 '왜구 고려인 다수설'에 대해 반박을 하고자 한다.
우선 '왜구 고려인 다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려사를 쓴 저자들이 왜구에 고려인이 가담한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창피해서 뺐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나는 그런 추론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왜구는 아니지만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 난민들에게 양수척들이 길잡이 노릇을 했다거나, 한때 고려에 복속하고 공물을 바치던 여진족들이 힘을 키워 금나라를 세우자 고려가 그런 금나라를 상국으로 섬겼고, 몽골군의 침입이 격화되던 시기에 평안도 지역의 고려인 관리들이 아예 몽골군에 항복하고 자발적으로 영토를 들어 바쳤다는 부끄러운 내용들도 모두 적혀 있다.
그런데 고려사를 쓴 사관들이 유독 왜구에만 관련해서 고려인 다수가 왜구에 가담한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부끄럽게 여겨 안 넣었다는 추론이 타당할까? 거란족이나 여진족이나 몽골군에 비해 왜구가 특별히 뭐가 달랐기에?
아울러 고려사 본편에 왜구 중 고려인이 다수였다거나 혹은 고려인과 일본인이 연합해서 왜구를 결성했다는 식의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왜구 고려인 다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터무니없이 무리한 추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구 고려인 다수설'을 더 구체적으로 논박해 본다. 만약 왜구 중 고려인이 다수였다거나 혹은 고려인과 일본인이 연합해서 왜구를 결성했다면, 고려 조정은 우선 왜구와 손잡고 나라에 반역을 한 고려 백성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상대로 '너희가 잘못을 뉘우치고 왜구와 더 이상 손잡지 않는다면 잘못을 묻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선무 공작을 했어야 한다. 실제로 망이와 망소이의 난 같이 고려 백성들이 조정에 맞서 일으킨 반란 같은 경우에는 그런 식의 선무 공작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고려사 어디를 보아도 고려 조정이 왜구에 가담한 고려인들을 상대로 선무 공작을 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심지어 왜구에 가담한 고려인들이 사는 지역을 정부군이 공격해서 그들의 가족들을 체포한다거나 주동자를 처형했다는 내용도 전혀 없다. 왜구 중 고려인이 다수였다거나 혹은 고려인과 일본인이 연합해서 왜구를 결성했다면, 왜 그런 내용들은 정작 고려사 본편에 없는 것일까?
'왜구 고려인 다수설'을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순몽의 "왜구 중에 일본인은 적고 고려인이 다수다."라는 발언 하나다. 그러나 정작 고려 말 왜구를 다룬 고려사 본편에는 그런 식의 내용이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이순몽은 평소 주위로부터 망령되고 미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의 발언도 신빙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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