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투의 경력 중 포르투갈 시절을 통해 벤투의 전술을 얘기해보겠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불세출의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시절의 팀으로, 호날두를 살리는게 곧 전술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어 그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철학과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날두 관련 이외의 전술 운용을 살펴본다면 그가 어떤 것에 우선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벤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1> 파울루 벤투의 전임자는 카를로스 케이로스, 그러나 너무 달랐던 두 사람.
우리 대표팀 감독 후보이기도 했던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벤투가 포르투갈을 맡기 직전의 포르투갈 감독이었습니다. 이 케이로스의 팀을 어떤 식으로 바꿔놓는가를 보면 벤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떠한 컨셉을 원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1> 수비라인을 내리는 케이로스, 올리는 벤투.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케이로스는 상당히 수비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브라질전에서는 수비라인을 PA 지역으로 내리면서 지독한 두 줄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던 그 외의 경기에서는 PA와 하프라인 사이 정도까지만 올렸을 뿐, 크게 수비라인을 끌어올리지 않는, 케이로스다운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벤투는 다릅니다. 벤투는 하프라인까지 적극적으로 수비라인을 끌어올렸습니다. 공격진과 30m 이내인 컴팩트한 간격을 유지하며 그 안에서 압박을 실시해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는 수비를 지향했습니다.
<1-2> '미드필더' 페페의 케이로스, '센터백' 페페의 벤투.
페페를 바라보는 두 감독의 관점 차이도 재밌습니다. 케이로스는 종종 페페를 미드필더로 기용했습니다. 이는 케이로스가 미드필드를 구성할 때 피지컬을 이용한 힘을 이용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중원을 장악하는 방법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중원에서의 패스는 이전보다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벤투는 케이로스와 정반대의 미드필드 구성을 보여줍니다. 케이로스가 중용했던 티아구 멘데스, 페드로 멘데스가 아닌 주앙 무티뉴와 카를로스 마틴스 등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이 선수들은 피지컬이 아닌 민첩한 움직임과 함께 기술을 겸비했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라울 메이렐레스와 함께 활동량을 늘려 케이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중원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페페는 더이상 미드필더로 기용하지 않고 수비라인을 올려썼던 벤투의 핵심 수비수로서 활약했습니다.
<1-3> 케이로스의 '스피드' 리에드손, 벤투의 '연계' 포스티가.
포르투갈의 원톱은 언제나 골치였습니다. 케이로스는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리에드손을 귀화시켜 원톱에 세웠습니다. 리에드손은 175cm으로 신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직접적인 득점원으로서 기대할만한 선수였습니다. 리에드손은 케이로스의 임기가 끝난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행 체제에서도 발탁되어 뛰고 있었지만, 벤투가 부임한 이후로는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벤투의 선택은 케이로스가 외면했던 포스티가였습니다. 포스티가는 득점력을 갖고 있던 선수였지만, 리에드손만큼 빠른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포스티가는 좀 더 넓은 활동량과 움직임, 패스를 통해 주변 선수들에게 기회를 창출해줄 연계능력이 있었습니다. 벤투는 이런 연계 능력을 활용해 호날두의 활용을 극대화했습니다.
<2> 벤투의 수비
<2-1> 벤투에게 절실한 '발 빠른' 센터백.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벤투는 수비라인을 매우 높이 끌어올리는 감독입니다. 이렇게 뒷공간이 많은 팀은 빠르게 커버하거나 백을 할 수 있는 발빠른 센터백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볼을 중원에서 탈취당했을 경우 라인을 올려 상대와 가까워진 수비와 바로 만날 가능성이 있는데, 센터백 한 명이 돌파당할 경우 커버플레이를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발이 느려서는 위험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 구성 시 반드시 최소 1명은 발빠른 센터백으로 배치할 겁니다.
<2-2> 히카르도 카르발류의 추방, 빌드업보다 수비력?
벤투는 팀에 해가 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히카르도 카르발류를 대표팀에서 추방했습니다. 히카르도 카르발류는 정교한 수비 능력으로도 유명한 선수였지만, 정확한 패스로 빌드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실 벤투의 지휘 아래에서는 수비라인이 높아지는만큼 당연히 후방 선수들의 패스 능력도 중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인을 올린만큼 후방 선수들도 압박에 노출되는데 앞선의 미드필더들에게 전달하는 전진 패스나 횡패스가 끊기면 뒤가 완전히 허허벌판이 되어버리니까요. 지금은 준수한 빌드업을 보여주지만 이 때만 해도 페페는 이런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선수였고, 브루노 알베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에 비해 패스에 강점이 있는 히카르도 카르발류가 중요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벤투는 과감히 그를 내칩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지는 않았습니다. 페페와 알베스의 높은 수준의 수비력을 포기하기 힘들어 새로운 선수의 발탁이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빌드업 대신 수비를 택했고, 이 결정으로 포르투갈은 후방에서의 빌드업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두 센터백의 롱패스 비율도 적지 않았지만 그 성공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판곤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전술은 진화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요?
<2-3> 풀백을 2배수로 뽑지 않고 제3의 포워드로 돌린 벤투.
기본적으로 벤투는 풀백에게 공격가담을 많이 요구합니다. 측면의 윙 포워드가 중앙으로 좁혀오면서 생기는 공간을 풀백 또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채우도록 하여 풀백의 직간접적으로 공격작업 관여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거의 투톱처럼 움직일 정도로 중앙 활동이 많은 호날두가 있는 쪽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른쪽 풀백 미구엘의 은퇴와 보싱와의 퇴출로 새롭게 발탁했던 주앙 페레이라는 벤투의 풀백 기용 방식을 잘 보여주는 선수입니다. 페레이라는 공격과 수비 모두 준수했던 선수였으나 벤투는 페레이라의 수비력을 활용하기 보다는 공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도록 했습니다. 공격 시에 볼이 커트된 경우 풀백이 전력으로 달려오긴 하지만 이 빈공간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더 빠른 백업이 가능한 중앙 미드필더가 커버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파비우 코엔트랑의 부상 시에 엘리시우를 대체발탁했습니다. 엘리시우는 윙과 풀백을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로, 이 선수를 활용할 때도 공격을 위해 상당히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이 역시 벤투가 얼마나 풀백에게 공격적인 면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 발탁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주전이었던 파비오 코엔트랑과 페레이라를 백업해줄 풀백으로 단 1명씩만 뽑았습니다. 여기서 1장을 뺀 자리는 제3의 공격수를 발탁하는데 쓰였습니다. 무조건 풀백 포지션을 적게 뽑는다기 보다는, 멀티 플레이어가 있는 곳을 고려해서 제 3의 포워드를 뽑았다는 건 앞으로 23인 명단을 예측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겁니다.
여기서 잠깐, 2012 유로에서는 미구엘 로페스, 2014 월드컵에서는 안드레 알메이다였습니다. 안드레 알메이다는 좌우를 모두 뛸 수 있었지만 미구엘 로페스는 오른쪽을 뛰는 선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왼쪽 풀백은 누구로 메울 생각이었을까요? 바로 미드필더 미구엘 벨로수입니다.
<2-4> 공격적인 풀백 기용의 상징, 풀백 미구엘 벨로수.
사실 미구엘 벨로수는 스포르팅에서 왼쪽 풀백으로 뛰던 시절이있습니다. 이 미구엘 벨로수를 왼쪽 풀백으로 전향시키려 했던 사람이 당시 스포르팅 감독이었던 벤투였습니다. 하지만 벨로수는 왼쪽 풀백을 싫어했고, 이 일때문에 이적까지 고려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1차전 독일전에서 주전 왼쪽 풀백 코엔트랑의 부상으로 2차전 미국전에서는 안드레 알메이다가 나섰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벤투는 새로운 풀백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 미구엘 벨로수가 왼쪽 풀백으로 출전합니다. 가나전에서 벨로수는 전문 풀백이 아니라서 애초에 측면 수비가 가져야할 수비 방법에 서툴렀던 벨로수인데다, 오버래핑과 수비 전환의 밸런스도 좋지 않아 애를 먹는 모습이었지만 기어이 자신의 강점이었던 킥으로 가나의 자책골을 이끌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전의 케이로스나 브라질 월드컵 포르투갈전의 뢰브처럼 센터백을 풀백으로 돌리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똑같은 월드컵 무대에서 벤투는 풀백의 공격을 택했다는 점과, 폭발적인 스피드나 공간 침투보다는 부드러운 볼 컨트롤 및 정확한 패스에 강점이 있었던 벨로수를 풀백으로 기용한 것은 벤투가 풀백에게 최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벤투의 미드필드
벤투는 4-3-3 또는 4-2-3-1을 기본 전형으로 삼고 이 전형 내에서 선수들에게 다양한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미드필드를 거쳐 전개가 이뤄지는 축구를 기본으로 삼고, 상황에 따라 후방에서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전방 측면의 호날두나 나니에게 한 번에 연결하는 빠른 전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밑에서 좀 더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벤투의 미드필드 운용은 공격보다 수비가 최우선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우선 3미들의 기본 구성은 수비형 미드필더 1명과 중앙 미드필더 2명을 두었습니다.
<3-1> 역삼각형 미드필더진 구성.
우리가 보통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하면 홀딩 미드필더의 역할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반드시 미드필드와 수비라인 사이의 1.5선을 굳게 지켜주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선수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피를로입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전문적으로 뒤에서 지켜줄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지기 마련이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팀들이 있습니다. 벤투가 이끌었던 포르투갈도 이런 유형에 속합니다.
포르투갈의 미드필더진은 수비 전환 시 수비라인 앞에 1차 수비라인을 구성하는 플레이나, 측면 수비 지원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는 수비형 미드필더 앞에 포진한 2명의 중앙 미드필더의 공통점 때문입니다. 그 공통점은 엄청난 활동량을 가지면서 진영에서 진영까지 활동 지역을 넓힐 줄 아는 선수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2명은 자신의 활동량을 이용하여 전방 압박은 물론, 측면 수비를 지원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는 공격 가담을 위해 상대 진영에 전진하면서도(심지어 한 명은 파이널 서드까지 진입한 경우임에도) 상대에게 볼을 내주는 경우 누구보다 빠르게 전환하여 상대를 지연시키거나 빠른 백으로 수비 라인을 지원합니다. 수비 상황에서는 전방압박까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만 들어도 엄청난 활동량과 민첩함이 요구되는 플레이를 펼친 결과, 상대에 대한 압박 숫자를 늘림으로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비에 대한 선택지를 줄여줬습니다. 무리한 플레이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포지셔닝을 통해 좀 더 안전하고 영리한 압박으로 수비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3-2>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벤투.
이게 기본적인 수비 전형일 뿐이고, 벤투는 상대의 후방 빌드업을 제어하기 위해 미드필드에서 지역 방어가 아닌 각자 맨투맨을 붙이기도 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전방까지 올라가 빌드업을 방해하는 등, 상대에 따라 대응하는 수비전술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변칙적인 수비 방법까지 온전히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3미들은 신태용 시절에도 도입하려다 실패했던 전술인데다, 선수들에게 간단한 전술로서 이해를 높이고자 썼던 4-4-2에 비해 더 복잡한 움직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벤투 역시 3미들 도입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3-3> 하얗게 불태워야할 2명의 '간결하고 정확한' 중앙 미드필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벤투는 중앙 미드필더에게 정말 많은 역할을 부여합니다. 앞에서는 수비에 관한 역할을 주로 설명드렸는데, 이번에는 수비 이외의 상황에서 이 2명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어떠한 역할과 움직임을 수행하는지 보겠습니다. 벤투의 체제 아래에서 이 포지션은 하울 메이렐레스와 주앙 무티뉴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곳입니다. 왜 이 2명이 4년이란 시간 동안 선발을 독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이 둘은 앞서 말한 공통점인 활동량과 민첩함을 가지고 있던 선수이지만, 그 외에 공통점이 더 있습니다. <1-2>에서 말한 케이로스와 달랐던 미드필드 관점인 '간결함'입니다.
벤투는 빠른 템포를 칠 때는 후방에서 볼을 잡은 선수가 전방으로 바로 내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드필드에서 볼을 전개하여 나갑니다. 하지만 벤투는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면서 간격이 좁아졌습니다. 좁아진 간격만큼 상대 선수와의 거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럴 때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전방으로 바로 투입하느냐, (2) 강력한 볼 간수 능력으로 볼을 지키면서 미드필드를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 (3) 상대가 접근하기 전에 볼을 미리 처리해서 빠르게 공격을 전개해 나가느냐입니다. 벤투가 선택했던 것은 3번이었습니다. 3가지 선택지들은 라인을 올리지 않더라도 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선택지만, 선수 간 간격이 좁아진 상황에서 3번은 다른 2가지보다 더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요구합니다. 볼을 잡은 선수는 공을 오래 갖고 있지 않고 미리 인식한 선수의 움직임에 맞춰 정확하게 패스를 줄 수 있는 시야와 패스 능력을 갖춰야 하고, 볼을 받는 선수의 움직임도 좋아야 합니다. 이런 간결함과 시야, 정확성이 잘 결합된 선수가 바로 메이렐레스와 무티뉴였고, 이 둘이 한창 좋았던 2012 유로에서는 사비, 부츠케츠, 이니에스타를 상대로도 중앙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4> 서로의 특성은 완전히 달랐던 '벤투의 황태자들' 무티뉴와 메이렐레스.
무티뉴와 메이렐레스의 얘기를 좀 더 한다면 앞서 나열한 공통점이 무색할 정도로 개개인의 특성은 완전히 다른 선수들입니다. 무티뉴는 메이렐레스보다 좀 더 창의적인 공격 전개에 능한 선수로, 4-3-3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 양 측면에서 뛰어가는 선수에게 찔러주는 뒷공간 패스나 벌려주는 패스를 뿌려주었고, 자신의 지역의 측면 선수들이 안으로 좁혀오는 상황일 경우 상대 수비의 좁은 공간을 풀어주기 위해 옆에 붙어 지원해주며 전진했습니다. 이렇게 측면에 관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PA까지 진입하는 경우는 적었고 좀 더 뒤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환을 염두에 둔 포지셔닝이기도 하지만, 파트너인 메이렐레스와의 밸런스를 지키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메이렐레스는 무티뉴보다 굉장히 역동적인 선수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 진영으로 직접 전진하며 상대 풀백의 뒷공간을 침투하든지, 상대 PA까지 진입하든지, PA 근처에서 적극적으로 슛을 시도하는 등 직접 골에 관여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스피드가 아주 빠른 선수는 아니었지만 뒤에 있던 무티뉴보다도 전환이 빠를 때가 있을 정도로 성실함과 적극성, 넓은 시야를 이용한 예측을 바탕으로 팀의 모든 부분에 관여했던 선수였습니다. 가끔 무티뉴가 전진하면 메이렐레스가 뒤에 머무는 등 서로의 밸런스도 상당히 좋았던 조합이었습니다. <3-1>부터 <3-4>까지 함께 엮어 이 2명의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을 생각해 보신다면, 상당히 기준이 까다로우며, 이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면 벤투의 팀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할 겁니다.
<3-5> 윌리엄 카르발류의 발탁, 수비형 미드필더에겐 템포보다 '적은 실수'.
벤투의 끌어올린 수비라인은 미드필드 구성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선 후방의 선수들이 상대의 전방압박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후방에서 볼을 잡고 있을 때 볼 간수나 패스에 실수가 있을 경우 상대의 역습에 너무 취약해집니다. 그래서 벤투는 이 자리에 볼 간수와 패스에 실수가 적은 선수를 중용합니다. 그가 실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선수 기용이 있었는데 바로 윌리엄 카르발류입니다.
월리엄 카르발류는 장점이 많은 선수입니다. 같은 포지션의 벨로수보다 우월한 피지컬을 가지고 확실한 볼 간수와 직접적인 몸싸움에서도 성공 확률이 높아 상대의 페네트레이션이나 침투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단단한 수비를 만들기에 적합한 선수입니다. 오히려 다른 팀에서라면 벨로수보다 더 중용받을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를 왜 벤투가 발탁하고 월드컵 3차전 선발로 썼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느린 템포입니다. 앞서 중앙 미드필더를 얘기하면서 말씀드렸듯이 벤투는 빠르고도 간결한 전개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이런 전개를 펼치기엔 템포가 느린 카르발류는 적합하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선수를 썼던 것은 앞서 말한 '실수가 적은'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볼컨트롤로 볼을 간수하는 벨로수와는 다르게 피지컬을 이용한 확실한 볼 간수와 패스로 상당히 정확하게 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투의 미드필더로서 최우선 덕목인 활동량을 갖추고 있는 선수가 카르발류였습니다. 결국 이 수비형 미드필더에 기용할 선수는 설령 템포를 포기하더라도 '적은 실수'는 포기하기 어려운 요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6> 앞으로 2년 간 벤투의 플랜 A는 공격형 미드필더 4-2-3-1?
앞에서 신나게 4-3-3을 설명해 놓고 이제와서 4-2-3-1이 왜 플랜 A인가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벤투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썼던 포메이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활용하는 4-2-3-1 이었습니다. 벤투는 취임 직후부터 유로예선을 치렀는데, 아무래도 본선의 강팀보다는 상대적 약팀이 상대기도 하고, 호날두의 존재로 상대가 뒷공간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내려앉아 역습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전방에 숫자를 늘리는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자리에 발탁하던 카를로스 마틴스, 루벤 미카엘은 무티뉴나 메이렐레스보다 활동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대신 이 선수들은 간결하고 빠른 미드필더를 좋아하는 벤투가 뽑은 선수들답게 볼을 오래 소유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움직여주는 선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투입하면서 노렸던 효과는 굉장히 명확했습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기술이 좋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앉은 상대의 좁은 공간에서도 좋은 기술을 바탕으로 상대의 미드필더와 수비라인 사이의 공간에서 기회를 만들어 좌우에서 침투하는 윙에서 킬러패스를 넣어주거나 원투패스를 통한 침투로 골까지 노렸습니다. 무티뉴나 메이렐레스가 크게 움직이면서 들어가지만 측면의 호날두와 나니에게 볼이 집중되어 공격루트가 결국 측면으로 몰렸던 4-3-3보다 중앙에 확실한 공격숫자를 1명 더 늘리면서 중앙 공격에 비중이 늘어나 공격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측면도 공간이 넓어지면서 위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마틴스나 미카엘이 간결함과 민첩함으로 빠르게 움직여주니 팀의 템포를 죽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빠른 측면 선수들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벤투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면서도 풀백의 공격가담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주도권을 가진 경기라고 해도 그만큼 수비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는 벨로수가 자리잡기 전인 2012 유로예선에서는 메이렐레스가 중용받았습니다. 아무래도 후방 수비 숫자가 적어지는만큼, 활동 범위가 넓고 수비숫자가 적어져서 직접 몸싸움까지 벌일 상황이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에 활동량이 좋고 몸싸움도 좋았던 메이렐레스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메이렐레스는 장거리 패스도 상당히 좋아 벤투에게 부담이 없는 기용이었습니다. 무티뉴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계속 기용했죠.
<3-7> 진화했던 벤투의 4-2-3-1, 카를로스 마틴스에서 하파 실바로.
그런데 유로에서 무티뉴-메이렐레스-벨로수 라인이 성공을 거둔 후 월드컵 예선에는 다른 기용을 선보입니다. 벤투는 메이렐레스보다 더 좋은 볼 컨트롤을 갖고 있고, 킬러패스에 더 능했던 무티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려 쓰기 시작합니다. 물론 무티뉴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부분도 있고, 완성시킨 미드필드에서의 수비 조직력을 좀 더 활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무티뉴는 월드컵예선에서 10도움을 올리면서 포르투갈의 월드컵 진출에 공을 세웠으나, 무티뉴가 득점력은 기대보다 좋지 않고, 오히려 후방에서의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무티뉴의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변화시킨 건 무티뉴 뿐만이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의 컨셉 자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유로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자주 선택받았던 카를로스 마틴스는 2014년 월드컵에 만 32세로 대표팀에 뛸 수 있는 나이였지만, 부상이 잦아 쓰기 어려운 선수였습니다. 그렇지만 2014년에 새롭게 발탁한 당시 만 21세의 기대주 하파 실바의 경우, 공격에서의 재능도 좋았지만 마틴스와는 다르게 움직임도 성실했고 활동량도 좋았습니다. 선수들에게 더 넓은 활동량과 밸런스를 요구하던 당시의 흐름에 맞는 기용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월드컵에서는 1차전 독일전에서의 대패로 4-2-3-1을 쓸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뛸 수 있었던 하파 실바를 멤버로 발탁했음을 볼 때, 여유가 있었다면 무티뉴를 전진시키거나 시우바를 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듯 4-2-3-1을 자주 썼던 벤투이기 때문에 최소한 아시아 예선까지는 이 포메이션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는 4-3-3으로 변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많이 뛰는 선수가 아닌, 중앙에서 이런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 역시 발탁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할 것입니다.
<3-8> 4-4-2로 변환도 가능, 하지만 신태용과는 다른 4-4-2.
벤투의 주된 포메이션인 4-3-3이 나왔을 때 진형 안에서 여러 변형이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운 전형은 수비로 전환된 상태에서 4-4-2의 전형이었습니다. 사실 확실한 원톱이 없었던 상태에서 신태용이 들고 나왔던 4-4-2는 좋은 자원이 몰려있던 2선을 최대한 쓸 수 있었던 한국의 상황에 가장 적합했던 전술이었습니다. 세계적인 흐름도 나름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전술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어나가길 원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벤투의 4-4-2는 이와 다른 전술을 쓰는 4-4-2입니다.
벤투의 4-4-2는 투톱에 알메이다와 같은 원톱 자원의 선수와 함께 무티뉴가 1선으로 나와 상대의 빌드업을 방해하기 위해 성실히 전방압박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사이드에는 호날두와 나니가 내려가 있는 모습이었는데, 신태용의 4-4-2의 윙이었던 이재성, 권창훈과는 움직임이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변화하고, 수비위치에 따라 4-4-2로 변환 된 것이지만, 이런 전형을 공격에도 그대로 가져다 놓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양 사이드의 밸런스때문에 상당히 제한적인 상황과 많은 전술적 고민이 필요한 포메이션이지만 애초에 벤투가 포르투갈에서 4-3-3을 쓴 것은 호날두와 나니의 수비가담이 적었기 때문에 팀의 중심이었던 선수들을 살리기에 가장 적합했던 전술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좌우에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으면서 팀의 스피드를 살려줄 정도의 빠른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는상황에서는 아시아 무대에서 공격 숫자를 늘리는 방법을 고민해볼 벤투로서도 4-4-2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4> 벤투의 공격
<4-1> 애매했던 우구 알메이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전방 압박과 미끼. 김신욱도?
포스티가와 함께 벤투의 포르투갈에서 2012 유로, 2014 월드컵까지 최전방을 지켜왔던 우구 알메이다는 전형적인 ''입니다. 다만, 적극적인 활동량과 움직임으로 볼을 받아서 동료에게 벌려주는 연계까지 괜찮았던 포스티가는 측면의 선수를 잘 살릴 수 있어 벤투에게 중용받을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알메이다에게는 그런 연계가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득점을 기대할만한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알메이다는 벤투로부터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과연 포르투갈에 공격수가 그렇게 없었을까요? 그것보다는 알메이다가 가지고 있던 '성실함'이 그를 살렸습니다. 그는 191cm에 몸이 두꺼운 거구임에도 전방압박에 충실히 참여하는 선수였습니다. 전방압박이 중요한 벤투에게 당연히 좋게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벤투는 특히 알메이다를 '미끼'로 많이 썼습니다. 알메이다가 상대 수비를 끌어올 수 있도록 순간적으로 후방을 향해 움직인다든지, 아니면 거구를 살려 선수 2명 이상을 끌고 다니는 등 여러 방법으로 측면의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자주 기용됐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김신욱입니다. 물론 월드컵 전부터 떨어진 컨디션으로 움직임도 덩달아 나빠졌습니다. 다만,얼마 전의 FC서울전에서는 전방 압박 등의 움직임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어 벤투가 자신이 써먹을 만한 선수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유심히 지켜볼 선수 중 한 명으로 보입니다.
<4-2> 넬손 올리베이라와 에데르의 발탁, 가 아닌 벤투의 취임일성.
<1-3>과 <4-1>을 통해 벤투에게 연계와 전방 압박이 공격수를 판단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2 유로에서 깜짝 발탁한 당시 만 20세의 넬손 올리베이라는 이런 요인에 잘 부합하는 선수였습니다. 넬손 올리베이라는 11/12 시즌에 벤피카에서 12경기에 나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음에도 벤투가 '포르투갈 공격수의 미래'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올리베이라는 벤투가 공격수로부터 요구하는 덕목이 무엇인지를 잘 알수 있었던 발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4 월드컵에서는 2016 유로 결승전 결승골의 주인공 에데르를 발탁합니다. 올리베이라는 프랑스 렌으로 이적해 13/14시즌 30경기 8골을 기록해 나쁘지 않은 기록을 냈음에도 에데르를 발탁했습니다. 에데르 역시 188cm의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면서 넓은 활동량과 함께 동료를 살리는 움직임이 있는 선수입니다. 여기에 12/13시즌에 브라가에서 18경기 13골이나 폭발시킨 득점력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메리트였습니다.
사실 자신이 극찬했고 지극정성을 쏟은 선수를 잘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슈틸리케와 이정협의 예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이에 반해 벤투는 올리베이라 대신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에데르를 대신 발탁했습니다. 이런 선수 선발은 '슈라우마'라고 까지 불리는 슈틸리케에 대한 혐오여론에게 굉장히 좋게 비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벤투의 선수 선발에 대한 여론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취임일성으로 '대표팀에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를 뽑을 것이며, 소속팀에서 경기력이 좋지 않은 선수는 뽑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골이 반드시 경기력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위 사례는 벤투의 발탁기준을 잘 증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4-3> 호날두 '아이솔레이션'
4-3-3의 경우 공격 컨셉은 상당히 명확했습니다. 양 측면의 윙은 공격 시에 상대 진영으로 빠르게 들어가는데, 이 때 풀백들이 윙에게 밀착마크를 할 경우 상대 풀백의 뒷공간을 포르투갈의 풀백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가 침투하여 공략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호날두가 중앙으로 활동반경을 넓혀서 상대 풀백을 유인하여 뒷공간을 넓힌 후, 중앙 미드필더가 침투하면 2차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풀백을 따돌린 호날두가 다시 침투하여 골을 넣는 계획적인 움직임도 많이 띄었습니다.
이렇게 벤투가 호날두의 활용을 극대화시키고자 내놓은 전술 중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전술이 있습니다. 벤투는 반대편에 풀백,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 포워드까지 촘촘히 배치하고, 공간이 있으면 있을수록 무서운 호날두에게 측면부터 중앙까지 더 많은 활동반경을 할당해줍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선수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만큼 전술적 맨투맨을 마크하기 위해 상대 선수들 역시 한 쪽으로 쏠리게 되고, 호날두가 그 활동반경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상대의 수비를 엷게 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됩니다. 호날두가 중앙에 집중하면 풀백이 지원해주는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농구에서 에이스의 득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쓰는 '아이솔레이션'과 비슷한 전술이 나오게됩니다. 이것은 과르디올라같은 감독들도 종종 쓰는 전술로 벤투도 이런 전술을 활용할 줄 아는 감독입니다.
물론 이런 아이솔레이션이 항상 적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호날두가 중앙에서 활동을 줄이면서 측면에서만 활동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른 윙들과 마찬가지로 측면에서 볼을 받아 전진시키거나, 반대 측면에서 전진하고 있을 경우 골대 근처로 침투해서 바로 골을 노리는 정통 윙 포워드로서 활용됐습니다. 이럴 경우 미드필더의 도움 없이 풀백만으로도 충분히 볼을 전진시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은 중앙 미드필더를 PA 부근까지 전진시키는 공격적인 운용이 있었습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 본다면 호날두를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호날두를 살릴 수 있는 전술을 잘 마련해주었던 벤투였습니다.
<5> 문제점
<5-1> 높아진 수비 라인, 벌어지는 공수 간격.
앞서 <3-2>에서 설명한 것처럼 벤투는 미드필더에게 요구사항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움직임이 잘못 맞물리면 대형 참사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수비형 미드필더가 사이드나 전방으로 나간 상황에서 전방 공격자원들이 체력 등의 이유로 전방 압박에 충실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중앙 미드필더 2명은 전방 압박을 도우러 나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수비라인을 올렸음에도 미드필더와의 라인 간격이 넓어지게 되죠. 미드필드에 큰 공간이 생겨 상대의 2선이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기 위한 상대팀들도 있습니다. 속수무책이죠. 이건 호날두와 나니같이 수비 가담에 소극적인 선수들을 쓰던 포르투갈에게 상당히 자주 일어나던 상황입니다. 벤투는 포르투갈 부임기간 끝까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5-2> 호날두와 나니로부터 무너진 벤투, 손흥민은?
그렇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전방 자원들이 애초부터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역할에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도 <4>를 통해 설명드렸듯이 윙과 톱에서 각자 맡아야할 임무까지 가능한 선수만이 이 포지션의 선수로 선택받을 것입니다. 호날두를 자유로이 놔주면서 호날두가 있는 측면이 상대에게 집중 공략을 당하기도 하고, 전방압박이 제대로 되지 않아 팀이 무너지는 같은 실수를 벤투는 두 번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므로, 4-3-3을 쓴다면 손흥민에게도 전방압박에 대한 요구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신태용과 대비되는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신태용은 손흥민을 극대화했지만, 벤투가 과연 손흥민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선택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손흥민의 수비 가담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손흥민이 말고도 골을 넣을 수 있는 다른 루트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직 결과도 모르고, 벤투가 어떤 보완책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2가지를 모두 취할 수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벤투의 체제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5-3> 매끄럽지 않았던 후방 빌드업.
앞서 <2-2>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센터백들이 후방에서 빌드업을 해줄 미드필더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상대 공격수의 전방압박에 의해 제한되어 이겨내지 못하고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잃어 역습 당하면서 체력을 다 깎아먹거나 결국 골을 먹는 모습이 종종 연출됐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높은 수비라인을 부수기 위한 전술이 많이 정교해진만큼, 벤투가 자신의 전술을 밀고 나간다면 후방 빌드업 문제는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5-4> 큰 대회나 승부처에는 수동적이었던 벤투.
벤투는 경기 전에는 다양한 대응을 내놓습니다. 그 대응은 3백에서 4백, 2톱에서 3톱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전술적인 움직임의 디테일에 강한 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수비에 관련해서는 상대에 따라 변화를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점에서, 쉽게 지지는 않는 감독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는 전술적 변화폭이 적습니다. 특히, 예선에서는 측면의 활기를 찾아오기 위해 중앙의공격을 늘리는 방식이 상당히 다양했는데 정작 본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이런 전술적 해법보다 호날두와 나니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전술적으로 다양하지 못하니 선수들도 그에 대한 의존이 심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과연 약이 되었을까요?
<5-5> 젊은 선수의 과감한 발굴은 장점, 그러나 서브는 서브일 뿐?
2014 월드컵의 멤버와 2012 유로 멤버 때와 비교해보면 서브진은 변화가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서브진은 12명 중 오직 5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중 골키퍼 2명은 그대로 살아남았으니, 필드플레이어로만 따진다면 10명 중 3명만 살아남고 70%가 물갈이 됐고, 만23세 이하 선수들 3명과 만 26세의 2명을 발탁하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2012 유로 4강 팀으로 성공한 팀이었음에도 상당한 변화입니다. 성공했던 팀의 멤버에 변화를 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자신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선수진에 변화를 주었던 점은 높이 평가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전은 단 한 명도 바뀌지 않은 점은 성공했던 팀의 조직력을 유지하고자 함이었지만, 오히려 이는 전술적 유동성이 크게 줄어들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5-6> 유행에 뒤처지기 시작한 벤투, '한국 축구의 철학'과 '트렌드' 중 그의 선택은?
"능동적인 스타일은 지속적으로 득점 상황을 창조하는 전진패스, 전진 드리블 공격과 주도적 수비리딩이다.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매우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말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공격전환은 우리가 공을 소유할 때 강한 역습을 하는 것이다. 재역습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수비 축구를 말한다.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지배하고, 체력적으로 지배하고,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경기를 할 것이다. 상대보다 많이 뛰는 축구를 하겠다." - 김판곤의 '한국축구의 철학'
"볼을 점유하고 최대한 기회를 많이 만드는 축구를 하고 싶다. 수비에선 강한 압박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지 잘 생각하고 있다. 우리 팀이 리스크를 줄이고 야망을 갖고 공격적으로 하는 팀이 됐으면 한다. 90분 동안 뛰면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축구를 하고 싶다." - 파울루 벤투의 취임 기자회견 중
위 2개의 기자회견문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김판곤은 벤투가 자신이 제시한 축구 철학에 부합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김판곤이 말한 주도적 수비리딩은 수비라인을 높인 컴팩트한 압박을 말한 것입니다. 이 라인 높은 압박축구의 경기방식은 앞서 설명한 벤투의 전술 방식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김판곤이 제시한 축구 철학은 현대의 축구 트렌드와 조금 동떨어졌지만, 이를 실현시킬 감독으로서 벤투는 상당히 적합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2012 유로까지는 컴팩트한 공수 간격과 전진한 수비라인, 전방압박, 그리고 정확성을 기반으로 한 볼점유가 트렌드였습니다. 위에 설명한대로 뒷공간을 넓게 내줄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벤투의 전술은 당시의 트렌드를 잘 따라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벤투가 2014년 월드컵 감독으로 영입됐다면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2018 월드컵에서 세계축구의 트렌드는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수비의 형태는 전방 압박에서 밀집 수비로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상대 공격수들을 하프라인 부근부터 압박했지만, 지금은 PA 전방 10m 부근에서 전방압박의 시작할 정도로 라인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방과 최후방의 간격은 30m 이내로 컴팩트한 만큼 상대가 우리보다 전환이 빠르다면 파이널 서드 지역에 볼을 투입하는 것 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대보다 빠른 템포로, 그리고 정확한 패스로 상대의 뒷공간 또는 상대의 1.5선 사이로 전개하면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점유율은 그만큼 중요성이 떨어졌습니다. 전진수비는 이 정교한 역습에 무너졌습니다. 여기에 볼투입이 힘들어진만큼 득점도 어려워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세트피스가 중요해지니, 세트피스가 위협적인 지역에서 파울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는게 현재 축구의 트렌드입니다. 여전히 트렌드에 부합하는 요소들도 있지만 벤투가 보여주는 전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트렌드로부터 멀어지는 요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6> 총평
상당히 공격적인 운용을 하면서도 상대의 공격패에 대응하는 전술이 분명 있는 감독입니다. 또한 선수 선발 부분에서는 자신의 기조가 뚜렷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들을 이끌어 나가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도 벤투를 통해 모자란 부분을 파악하고 성장할 수 있는 만큼, 벤투도 계약기간 4년 5개월 동안 다양한 축구를 접하며 자신의 전술을 발전시키는 시간이 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무의미한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벤투는 감독으로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50대에 아직 진입하지 않은 감독으로, 트렌드를 잘 받아들일 자세를 갖췄다고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 벤투의 선수 선발과 평가전을 보면서 변화가 있을지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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