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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889 출처
이 글은 7년 전 (2019/1/02) 게시물이에요

[목차]


1. 침략자들의 무덤

2. 소련군의 기습 침공

3. 진퇴양난에 빠진 소련군

4. 미국의 개입


5. 무자헤딘의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




소련 지도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프간 침공에서 완전히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다. 현지 사람들의 저항 의지는 소련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무능한 카르말 정권은 이를 해결할 역량이 없었다. 이미 발을 뺄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병력을 대폭 증강할 수도 없었다. 서방과의 대치와 병참 문제로 소련이 아프간에 배치할 수 있는 병력은 10만에서 최대 15만이 상한선이었다. 스탈린의 참담한 망신으로 끝났던 1940년의 겨울 전쟁보다도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무자헤딘과의 지지부진한 싸움을 벌이면서 막대한 물자와 인명만 끝없이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6. 세계 각국의 원조 | 인스티즈


소련이 자랑하는 기계화 부대도 아프간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무자헤딘은 사전에 정보를 파악한 후 좁은 산길을 따라서 이동 중인 소련군 행렬의 머리와 꼬리를 향해 대전차 무기나 커다란 바위를 굴려서 격파했다, 그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소련군의 머리 위로 공격을 퍼부어 큰 피해를 입혔다.


소련군으로서는 무장도 변변치 않은 무자헤딘을 상대로 그야말로 고전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자헤딘이 소련군을 몰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월맹군과는 달리 무자헤딘은 안정적인 후방을 확보할 수 없었고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 중인 수많은 저항 조직을 하나로 아우를 만한 구심점도 없었다. 이들은 소련군이라는 공동의 적은 있지만 그들 나름의 이념 차이와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쉽게 뭉치기 어려웠다. 실제로 소련군이 물러나자 당장 서로에게 총부리를 돌려서 치열한 내전을 벌인 것만 보더라도 아프간의 복잡한 정치적 사정을 알 수 있다.


무자헤딘의 무기와 장비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무기는 소총과 박격포 같은 경화기 정도였으나 규모가 작은 대장간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간이 생산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조잡하기 짝이 없었고 수량도 미미했다. 대신 소련의 적들이 이들을 돕기 위하여 나섰다. 그렇다고 대놓고 서방제 무기를 지원할 수는 없었다. 자칫 소련을 자극하여 새로운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CIA는 세계 각지에서 폐기 직전의 고철 무기들을 끌어모았다. 모두 공산권 무기들이었다. 과거 친소 국가였지만 4차 중동전쟁 이후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었던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은 1950~60년대에 소련이 자신들에게 제공했던 구식 무기들을 CIA에 팔았다. 터키와 파키스탄도 2차 대전 당시 사용했던 낡은 소총과 경기관총, 탄약을 넘겼다. 특히 파키스탄은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와 물자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자신들이 빼돌렸다. 1986년부터 제공되기 시작한 최신예 스팅어 휴대용 미사일의 대부분은 파키스탄군의 손에 들어갔고 무자헤딘은 그중의 극히 일부만 얻을 수 있었다.


가장 큰 공급처는 중국이었다. 1960년대 말 소련과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던 중국은 아프간의 저항 세력들을 지원함으로써 소련에게 골탕을 먹임과 동시에 짭짤한 부수익도 올렸다. AK-47의 복제판인 56식 소총과 RPG-7 휴대용 대전차 로켓포, 60mm 박격포, 총류탄 등 대량의 무기를 CIA에 넘기고 연간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107mm 63식 다연장 로켓포가 가장 위력적이었으며, 소련군은 무자헤딘을 공격할 때 병력을 넓게 분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CIA와 연계된 국가 중에는 폴란드 같은 엄연히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공산 국가들도 있었다. 소련의 통제가 느슨해지면서 부패한 폴란드 장교들은 몰래 무기를 팔아먹고 뒷돈을 챙겼다. 이러한 원조 무기들은 파키스탄의 카라치 항구에 하역된 뒤 일제 도요타 픽업 트럭에 실린 채 국경을 넘은 다음 무자헤딘에게 전달되었다. 소련은 수시로 폭격기와 무장 헬기를 동원하여 맹폭을 퍼부었지만 1천km가 넘는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을 따라 은밀히 유지되는 원조 루트를 차단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6. 세계 각국의 원조 | 인스티즈

(중국제 63식 다연장 로켓포. 구경 107mm, 중량 385kg, 최대 사거리 8km. 총 12발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발사 속도는 7~9초 정도였다. 중량이 비교적 가벼워 견인용 트럭이나 마차, 오토바이에도 묶어서 끌고 다닐 수 있었다. 또한 재장전 시간이 짧고 운용이 간편하여 아프간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중동 침략의 전초로 본 사우디는 소련군에 대항하는 것을 "지하드(성전)"라고 외치면서 많은 자금을 제공했다. 무기와 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련과 싸우기 위하여 아프간으로 향했다. 대부분은 아랍인이었다. 파키스탄 언론인 아메드 라시드는 적어도 "35,000여 명이 아프간을 위해 싸웠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의 CIA 지부장이었던 밀턴 비어든은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여 싸운 사람은 2~3천여 명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중에는 사우디 명문 출신의 엘리트로 훗날 알카에다를 조직하여 9.11 테러를 자행하게 되는 오사마 빈 라덴도 있었다. 당시 20대였던 그는 아프간에서 직접 전쟁을 경험했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후 모금 활동과 의용군 모집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 라덴은 아프간의 저항 세력을 후원하는 가장 명망 있는 활동가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막대한 무기와 자금, 물자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무자헤딘의 최대 공급처는 다름아닌 소련군이었다. 무자헤딘이 확보하는 무기의 80%는 소련군과 아프간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것이었다. 마수드는 자신을 방문한 서방 기자 에드워드 지라르데트에게 "우리가 아무리 많은 탱크와 트럭을 파괴해도 이를 보급품으로 가져갈 수 없다면 승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련군은 좁은 산길에서 무자헤딘의 습격을 받을 경우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탱크와 차량, 무기를 버린 채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버려진 무기들은 곧 무자헤딘에 의하여 소련군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6. 세계 각국의 원조 | 인스티즈


하지만 무자헤딘도 중화기는 거의 활용할 수 없었고, 외부에서 제공되는 무기 또한 소총과 기관총, 박격포와 같은 경화기였기 때문에 소련군과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약 잘 방비된 소련군 거점을 직접 공격할 경우, 아무리 많은 수가 있어도 엄청난 대가를 각오해야 했다. 따라서 대부대를 편성하는 대신, 300명 단위로 나누어 단위 부대의 숫자를 늘리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파상 공세를 하는 식으로 소련군의 출혈을 강요했다. 비록 개별적인 전과는 제한적이더라도 피해를 줄이면서 소련군을 끝없이 괴롭힐 수 있었던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약 10~15만 명의 소련군과 비슷한 숫자의 아프간 정부군, 그리고 15~25만 명 정도의 무자헤딘의 싸움이 되었다. 8년의 전쟁 동안 소련군의 손실은 연간 1천~2천 명, 아프간 정부군이 5천여 명 정도였다. 전쟁 내내 사상자가 큰 변동 없이 거의 일정했다는 것은 아프간 전쟁의 양상이 결정적인 대규모의 전투가 없이 지리한 소모전이 끝없이 반복되었다는 뜻이다. 소련군이 2차 대전과 냉전기에 경험했던 것들은 아프간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병사들은 근대전에는 익숙했지만 산악전의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소련군 병사들 사이에서 염전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프간 침공에 앞장섰던 국방 장관 우스티노프는 장군들에게 물었다. "내가 장관도 아니고 계급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그곳의 전쟁은 도대체 언제쯤 끝나겠소?" 하지만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무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6. 세계 각국의 원조 | 인스티즈

(무자헤딘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채 버려져 있는 소련제 T-54 전차. 소련군의 운명을 보여 준다.)


1984년 소련 지도부는 아프간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으로 병력을 대거 증원하고 아프간 정부군과 함께 총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한 해 동안 소련군은 장교 300여 명을 포함하여 2,300여 전사자를 냈지만 아프간 28개 주 중에서 단 한 곳에서도 게릴라들을 뿌리 뽑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저항 세력은 더욱 커졌고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고지에서 무자헤딘이 발사하는 로켓포 공격은 평지에 있는 소련군 기지와 도시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1986년 11월 20일에는 아프간 정부의 수장인 카르말이 건강을 이유로 스스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10년 후인 1996년 12일 13일 모스크바의 한 병동에서 간암으로 죽었다. 카르말이 물러나면서 하지 무함마드 참카니를 거쳐서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던 모하마드 나지불라에게 실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누가 정권을 쥐건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내전으로 인하여 재정은 거의 파산 지경으로 내몰렸고 경제는 마비되었다. 오직 소련이 제공하는 막대한 원조에 매달려 간신히 정권을 유지했으나 소련군이 물러나는 순간 카불 정부 또한 끝장나는 것이었다.


아프간에서 무자헤딘의 활약상에 고무된 미국은 보다 본격적으로 개입하기로 결심했다. 1985년 3월 15일 레이건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정책으로서 NSDD(국가 안보 정책 결정 지침)-166을 승인했다. 그동안 구식 무기나 은밀하게 원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인공 위성으로 촬영한 정보를 제공하고 첨단 무기를 원조했다. 또한 CIA는 무자헤딘과 아랍 의용군을 훈련시키고 소련군에 대항할 수 있는 전술을 가르쳤다. 그중에는 신형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어 미사일도 있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6. 세계 각국의 원조 | 인스티즈

(1978년에 저고도 침투 항공기를 격추시키기 위하여 제너럴 다이너믹스사에서 개발한 FIM-92 스팅어 미사일.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 SAS는 스팅어 미사일로 아르헨티나 공군의 헬기를 격추시켜 많은 피해를 입혔다. 열 추적 방식으로 구경 70mm, 운용 인력 2명, 유효 고도 3.8km, 최대 사거리 4.8km, 무게 15kg. 비교적 가볍고 운용과 휴대가 간편하여 아프간에서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아프간 전쟁에서 스팅어의 명중률은 75%, 격추율은 33%에 달했다.)


1986년 9월 26일 카불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아프간 동부 국경의 잘랄라바드(Jalalabad) 비행장에서 소련군 Mi-24D 하인드 무장 헬기 편대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기관총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중장갑과 30mm 기관포, 로켓탄으로 무장하여 "사탄의 마차"라 불리며 무자헤딘에게는 그야말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헬기들이 하늘로 떠오르자마자 어딘가에서 미사일이 궤적을 남기면서 날라와 동체에 꽂혔다. 순식간에 8대 중 3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프간에서 스팅어 미사일의 첫 데뷔전이었다. 이제 소련군은 자신들의 가장 강점이었던 항공기와 헬기조차 함부로 띄울 수 없게 되었다. 저공 비행은 자살 행위였다. 1986년에만 해도 소련군은 200대가 넘는 헬기를 잃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여 앞으로의 싸움이 소련군에게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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