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글 : http://cafe.daum.net/cs11sz/LG19/328686
전 글 보고 온 모카들은
갑자기 마리 앙뚜아네뜨가
여기서 왜 나와...? 하겠지만
다 이유가 있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한테
눈 뜨고 땅이 뺏긴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는
포기하지 않고
상여자답게 복수를 준비함
우선 오스트리아의 패배 원인을
오스트리아 제국 내부에 있다고 보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사회 전반적인 개혁을 실시해
그렇게 내부를 개혁하면서
동시에
누구와 동맹을 맺어야
프로이센을 바를 수 있을지 고민함
그런데
당시 프랑스 왕이던 루이 15세에게는
퐁파두르라는 정부가 있었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유치하게도,,
이 퐁파두르 부인의 이전 성으로
언어유희를 하여
'생선 가게 아가씨'라고 놀림
퐁파두르 부인은 당시 루이 15세가
가장 아꼈던 정부였는데,
자신을 조롱하는
프리드리히 2세를
좋아하지 않았음.
그러던 중,
파리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외교관
카우니츠는 그걸 보고
퐁파두르 부인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함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안좋은 감정이 있던
퐁파두르 부인은 그걸
루이 15세에게 전함 ㅇㅇ
그 결과
끝.
은 농담이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마리아 안토니아가
훗날 루이 16세가 되는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오귀스트와 결혼하여
마리 앙뚜아네뜨가 되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동맹을 맺게됨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손을 잡은 것이고,
지난 2백년간 적으로 지냈던 두 나라가
동맹을 맺은 거임!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고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라지만
이 놀라운 외교 전술은
"외교 혁명", "마술 외교" 등으로 불릴 정도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던진 과감한 승부수였음.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다시 전쟁을 벌이는데
이게 바로 7년 전쟁임
참고로
프랑스의 영원한 라이벌
영국은 프랑스와 반대인
프로이센에 붙음
(프랑스와 영국은 사실 이미 북아메리카에서
식민지를 두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음)
정리하자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오스트리아+영국 VS 프로이센+프랑스
7년전쟁
오스트리아+프랑스 VS 프로이센+영국
완전히 뒤바뀐 상황이 된거야!!!
초반 전세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원하는대로
오스트리아 동맹이 프로이센 동맹을 줘패고 다녔음
그런데
러시아가 갑자기 껴듬;
모카들 심경 : 러,,시아....?
원래 러시아의 짜르(황제)는
친 프랑스적인 엘리자베타 황제였고,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함께
프로이센과 싸우던 주축이었음.
그런데 독신인 엘리자베타 황제가 사망한 후
그녀의 조카인 표트르3세가 즉위함.
표트르 3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의 팬이었음ㅋㅋ
진짜로ㅇㅇ
사실 이 프리드리히 2세는
대표적인 계몽전제군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갈등 중 하나였던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정책을 펼치고,
보통교육을 확대하는 등
프로이센에선 칭송 받는 왕이라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리기도 함.
암튼
이 계몽군주를 흠모하던
표트르 3세는 즉위 후 즉시
베를린 코 앞까지 진출해있던
러시아군을 퇴각시키고,
배상금을 받지 않고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음
이미 여기저기서 영국과 전쟁을 벌이던
프랑스는 전쟁에 지쳐서 슬그머니
7년전쟁을 끝내고,,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패배로
전쟁은 막을 내려.
왕위계승전쟁의 계기가 되었던
실레지아는 완전히 프로이센의 땅이 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이던
프로이센은 완전한 유럽의 패권국가로 거듭나게되었고
반면에 오스트리아 점차 세력을 잃게 됨.
하지만 이 7년 전쟁은 더 큰 소용돌이를 불러오게 되는데...
이건 진짜 다음에!
읽어준 모카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