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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567 출처
이 글은 6년 전 (2019/11/08)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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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 인스티즈

장선희, 누란

 

 

 

제 몸 허옇게 드러내는 곳 있네

떠도는 자의 헤진 옷자락 같은 물줄기

그곳은 타클라마칸의 젖줄이라네

퉁퉁 분 젖줄을 거슬러 은고기 찾던 사내들

솟대로 솟은 소하묘 나무, 그 속을

바람은 거룻배처럼 드나들었네

소금 기둥에 매여 있던 누란 미녀

배 형상 관 속에 누워 사천 년을 건너왔네

바람의 뼈 같은 희미한 목소리

초원 가득 돋아있네

모래바람으로 떠돌던 사내들이 머물다 간 로프노르

한번은 여자를 살고

또 한 번은 남자를 살기 위해

돌아와야 하는 땅

오아시스가 있었다던 그곳

목마름은 수천 년 물을 마셔도 달랠 수 없는 걸까

이정표 없이 걸어온 맨발이 목젖을 드러내는 누란

길 잃는 것은 죽음과 같아서

사랑은 모래바람으로 돌아와 쌓이는데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

머리에 꽂힌 해오라기 깃털 멀리 던지고

, 헛구역질하듯 소금호수에 들어서네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 인스티즈


이재무, 경쾌한 유랑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참새 무리를 만나다

저들은 떼 지어 다니면서 대오 짓지 않고

따로 놀며 생업에 분주하다

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다

, 경쾌한 유랑의 족속들은

농업 부족의 일원으로 살았던

텃새 시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가는 발목 튀는 공처럼 맨땅 뛰어다니며

금세 휘발되는 음표 통통통 마구 찍어대는

저 가볍고 날렵한 동작들은

잠 다 빠져나가지 못한 부은 몸을

순간 들것이 되어 가볍게 들어 올린다

수다의 꽃피우며 검은 부리로 쉴 새 없이

일용할 양식 쪼아대는

근면한 황족의 회백과 다갈색 빛깔 속에는

푸른 피가 유전하고 있을 것이다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만난

발랄 상쾌한 살림 어질고 환하고 눈부시다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 인스티즈


김진기, 어르신은 힘이 세다

 

 

 

세탁물 속에서 이천 원이 나왔다

윗도리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었던 지폐 두 장

구겨졌지만 멀쩡하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가끔 주머니에서

뭉친 휴지나 지폐가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젖은 종이는

메모지나 영수증으로 추측 될 뿐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폐는 힘이 세다

흔들고 쥐어짜고 두드리고

거친 소용돌이를 헤쳐나오고도

또렷한 일련번호, 선연한 은박 수직선

어른의 수염 한 올 다치지 않는다

툭툭 털고 일어서는 저 올곧은 뼈대라니

 

나보다 힘이 센 어른 앞에 서면

왠지 무릎을 꿇고 싶다

등을 구부리고 돈을 만져본다

서슬이 퍼렇다

 

어르신 두 장 공손하게 지갑에 모신다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 인스티즈


고영민, 민물

 

 

 

민물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약간 미지근한

물살이 세지 않은

입이 둥근 물고기가 모여사는

어탕집 평상 위에

할머니 넷이 나앉아 소리 나게 웃는다

어디서 오는 걸까, 저 민물의 웃음은

꼬박 육칠십 년

합치면 이백년을 족히 넘게

이 강 여울에 살았을 법한

강 건너 호두나무 숲이 바람에 일렁인다

긴 지느러미의

물풀처럼

어탕이 끓는 동안

깜박 잠이 든 세 살 딸애가

자면서 웃는다

오후의 볕이 기우는 사이

어디를 갔다 오느냐

이제 막 민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아가미의 아이야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 인스티즈

최정란, 모두 네 덕분

 

 

 

내 그림자 참 완전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길어졌다 짧아졌다, 옅어졌다 짙어졌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꽃피고 햇빛 좋은 날

좀 앞장서라 하여도

제가 나설 자리 아니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니

겸손하기까지 하다

한 마디 안 하는데도

일억 오천만 년 전 제 별을 출발한 빛이

참 대접 잘 받은 것 같다 칭찬한다

그림자 덕분에 나도

이만큼 사람 구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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