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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19/12/30) 게시물이에요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크리스마스 | 인스티즈

들어가며


튜더 시대는 영국 크리스마스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대다.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해온 크리스마스 축제의 전통이 만개한 시대이자 절정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8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의 종교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의 중세적 전통은 큰 단절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17세기 퓨리턴 정권이 크리스마스를 금지하고 탄압하면서(크롬웰 정권이 민심을 잃게 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 전통은 한때 맥이 끊겼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되살아났지만 몇몇 전통들은 끝내 복구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현대적 이미지의 크리스마스가 재정립된다.


그렇다면, 약 5백년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으며, 현대 서구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과 어떻게 달랐을까?



성탄 시기


중세-근대 초기의 크리스마스가 현대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을 하나 골라보라면, 우선 축제모드로 들어가는 시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서구에서는 12월이 가까워오면서 길거리나 상점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변신하기 시작하며, 12월이면 벌써 흥겨운 축제 분위기가 시작이다.


그러나 500년전에는 달랐다. 중세에서 근대 초의 대림 시기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 시기가 지나간다. 대림 시기는 죄를 참회하고 단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금육도 적용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고기와 계란, 치즈를 먹지 않는다. 더 엄숙하고 금욕적으로 대림 시기를 보낼수록 성탄 축제의 기쁨도 더 크다는 것이 이 시기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엄숙함은 12월 24일에 절정에 달한다. 왕국 내에 주요 대성당들은 저녁 시간부터 특별한 전례를 행한다. 대표적인 예로, 잉글랜드 남서부의 중요 도시인 엑시터의 주교 존 드 그란디슨은 14세기에 어두운 성당에서 촛불을 든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며 성당 내부를 도는 아름다운 예식을 도입했는데, 매우 반응이 좋아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란디슨 주교가 도입한 크리스마스 이브 전례를 리허설하는 모습: 14세기의 예식은 2019년에도 변함없이 거행된다.)


현대의 크리스마스에서 12월 25일은 축제 분위기의 절정이다. 그리고 25일 저녁이 되면 슬슬 분위기가 식어서 다음날이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튜더 시기에는 정반대였다. 12월 25일은 축제의 절정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때부터 이른바 12 Days of Christmas가 시작된다. 중세-튜더 시기에 '성탄 시기'는 크리스마스 당일에서 1월 5일 밤까지다. 그리고 이 12일 내내 크리스마스 축제의 기간이다.



크리스마스 축제


왠지 중세인들이나 튜더 시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도 내내 엄숙하고 종교적으로만 보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다.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번 강조한 바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500년 전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현대인들보다 더 광란의 시기이기도 했다. 일단 성탄 아침 미사를 엄숙하면서도 장엄하게 드리고 나면, 그때부터 미친듯이 노는 파티가 시작된다.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크리스마스 | 인스티즈

중세-근대 초 크리스마스 축제의 중요한 키워드는 '질서의 역전'이다. 사실 신학적으로도 크리스마스 시기는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비천한 곳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중세-근대 초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온몸으로 실현했다.


우선 교회부터 이것을 앞장서서 행한다. 12월 6일, 성 니콜라우스 축일에 각 성당과 수도원들은 부속학교 학생들이나 성가대 소년들 중 한명을 '소년 주교'로 임명한다. 대체로 동료 소년들의 투표로 결정되었고, 본당 신부나 수도원장은 결과를 승인하고 정식으로 주교의 복장을 하사한다. 말도 안되는 짓같지만, 이 소년 주교가 진짜로 12월 28일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까지 교회의 전례를 집전한다. 중세-근대 초 유럽에서 가장 계서제가 엄격한 집단이 그 질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왕궁에서 시골 지주의 영지에 이르기까지 이를 똑같이 따라한다. 왕은 크리스마스 축제기간동안 자기 대신 파티를 주재할 사람을 궁정인중에 선발하고, 각 마을들도 대리 왕을 한명씩 뽑는다. 이 사람들을 King of Misrule이라고 한다. 대체로 마을에서 가장 잘 논다고 소문난 사람이 선발되었다. 일단 뽑히면 왕도, 영주도 크리스마스 기간동안은 이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물론 하는 일은 파티 사회자 같은 일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런 '질서의 역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기는 신분질서가 엄격한 사회다. 그러나 항상 조이기만 해서는 사회가 유지될수가 없다. 1년의 단 며칠이라도 숨막힐것같은 질서를 느슨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전근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원리다.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 축제 12일간은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이 노동은 물론 신분질서로부터도 해방되서 온전히 즐길수 있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붉은 고기를 마음껏 먹고, 알코올도 잔뜩 섭취하고 다양한 게임을 즐긴다. 대림 시기 내내 단식과 금육한 덕분에 비교적 음식도 풍족하다. 설령 풍족하지 않더라도, 이 시기에는 영주와 지주들이 어느정도는 베풀어야 하는 시기다.


물론 항상 광란의 파티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중세-근대 초 사람들은 엄연히 종교적인 사람들이었고, 크리스마스 축제 12일은 동시에 종교적 축일이기도 하다. 즐길 때는 즐기고, 또 미사를 드릴때는 경건하게 참여한다. 그중에서 12월 28일은 현대 사회에서는 전혀 중요한 날이 아니지만, 중세와 튜더 시대의 크리스마스 시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28일은 헤로데 대왕에게 학살당한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기념하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로 엄숙하게 기념했다. 중세 말- 튜더 시대에 가장 인기있었던 캐롤 하나가 이 시기에 특별히 불리던 것이었으며, 지금도 영국에서는 매우 인기있는 캐롤 중 하나다.





이렇게 구슬픈 캐롤이 중세와 튜더 시대 사람들에게 유독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실 어렵지 않다. 전근대는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노래하는 가사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축일이 중세-근대 초기 크리스마스 시기에 특히 중요하게 기념되었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축제의 마무리


현대에는 진작 축제 분위기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했을 시기에도 튜더 시대 사람들에게는 축제가 이어진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축제가 절정에 이르는 날은 1월 5일이다. 12 Days의 마지막날인 이 날 저녁은 특히 '십이야(Twelfth Night)'라고 불리며, 중세인들과 튜더 시대 사람들들에게는 1년중 최대의 축제 중 하나였다. 이 날 저녁은 남은 음식은 모조리 다 차려서 또한번 미친듯이 놀면서 보낸다.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등불을 밝히고 캐롤을 부르며 행진한다. 집집마다 돌면서 캐롤을 부르고, 또 들러서 얻어먹고 하면서 흥겹게 축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한다.



나오며


축제의 밤이 가고 아침이 밝으면,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뒤집어졌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한 해의 사이클이 시작된다. 특히 이 날을 Plough Monday라고 불리며, 농민들이 다시 쟁기를 잡는 첫날이다. 축제가 끝난 것은 아쉽지만, 또 한 해를 보내면 그 다음 축제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아쉬움을 달래며 일터로 돌아간다.


이것이 중세와 근대 초 농민들에게 성탄 시기가 중요했던 이유이다. 이렇게 모든 사회적 제약과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원없이 놀고 나면 어느정도 에너지를 얻어서 다시 고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전근대 농민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때때로 이런 휴식과 해방의 시기가 존재했다는 것이 한해의 사이클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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