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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20/1/05)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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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 인스티즈


김재진, 마음의 절

 

 

 

마음이 먼저 가 절을 만난다

더러는 만남보다 먼저 이별이 오고

더러는 삶보다 먼저 죽음이 온다

설령 우리가 다음 생에서 만난다 한들

만나서 숲이 되거나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엇하랴

절은 꽃 아래 그늘을 길러 어둠을 맞고

문 열린 대웅전은 빈 배 같아라

왔어도 머물지 못해 지나가는 바람은

이맘때 내가 버린 슬픔 같은데

더러는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오고

더러는 용서보다 상실이 먼저 오니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한 생은 눈물 같아라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 인스티즈


곽도경, 부용

 

 

 

키 훤칠한 꽃 한 송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흙 담장

안간힘으로 받치고 서 있다

 

태풍 불고 폭우 쏟아지던 한 계절

힘없는 것끼리 안아주고 붙잡아 주며

무탈하게 잘 건너왔다고

서로 어깨 토닥여 주며 서 있다

 

몇 해 전

암으로 남편 먼저 딴 세상 보낸

내 친구 숙이

그 키만 멀대같은 가스나

 

어린 두 딸 부둥켜 안고

터지는 울음 목젖으로 넘기며

남몰래 눈물 훔치고 서 있다

그녀 어깨위에

호랑나비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 인스티즈


장순익,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보내주신 백계동 녹차를

오늘에야 개봉을 했습니다

막연히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단풍 들고

낙엽 지고

겨울이 깊어졌습니다

밀어둔 신문 한꺼번에 읽다

손 시린 아침

찻물 끓여 쟁반에 놓고

두 개의 잔을 놓으려다 흠칫했습니다

 

차 한 잔을 따라

두 손으로 감싸 쥘 때

뜻밖입니다

내가 내 손을 잡아준 지

참 오랜만입니다

 

덕분에 내게 안부를 묻습니다

녹차 잎이

계절을 모르고

마음 가는 쪽으로 잎 펼쳐갑니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 인스티즈


김충규, 발자국

 

 

 

비 온 뒤의 질척한 산길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 헉헉

산의 정상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발자국 위에 느리게 내 발자국 놓아보다 혹

이 발자국 저승을 향해 걸어간 이의

마지막 발자국이 아닌가

싶어 숨결이 확 격렬해졌다

순간 휘청, 쓰러지는 나를

곁의 나무가 안아주었다

나는 그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 더 포개지 않았다

겹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내 발자국을 찍으며

가끔씩 휙 뒤돌아보았다 혹

누가 내 발자국 위에

자신의 발자국 놓으며 오지 않는지

나를, 저승 향해 걸어간 자로 착각하지는 않는지

한번 달아오른 숨결

쉬이 잔잔해지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 인스티즈


오봉옥, ()

 

 

 

어느 날

피투성이로 누워

가쁜 숨

몰아쉬고 있을 때

 

이름도 모를

한 천사가

제 몸을

헐어주겠다고 사뿐

 

사뿐

 

사뿐, 그 벌건 입속으로

걸어 들어온 뒤

다시 하늘로

총총

사라져 간 것이다

 

그 뒤 난

길에 침을 뱉거나

무단횡단을 하다가도

우뚝우뚝

걸음을 멈추곤 하였는데

 

그건 순전히

내 안의 천사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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