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을 방문하여 독재체제 구축에 성공한 마오쩌둥과 김일성을 존경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가 선택한방법은 동양의 세뇌법과는 달리, 나치와 비슷한것이었는데...
그 방법은 전국민을 도청하는 것.
또한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반정부집단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이 독재자의 악명을 더 높이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으니...
차우셰스쿠는 한번 입은 양복은 다시는 입지 않았다.
또한 세균 암살에 대한 공포로 엘리자베스 2세와 악수한 직후 그 자리에서 알콜로 소독했다.
이게 얼마나 큰 외교적 결례인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건강을 이유로 모든 영아에게 수혈을 하도록 했는데 혈액검사를 제대로 안해 수백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서방에 성경을 지원받아 화장지로 만들었는데 파쇄가 제대로 안돼 화장지에서 성경구절이 보인다.
지하철 공사중 그자리에 있던 공원을 보고 싶다고하여 하룻밤만에 복구시켜버린다.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수입은 안하고 수출만 하는 정책을 밀어부첬다...
ㅎㄷㄷ .
차우셰스쿠의 아내 엘레나의 정식명칭은 "인민의 자애로운 어머니."
한편 그녀는 "인민들은 마치 벌레와 같다. 아무리 먹여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발언을 했다고.
차우셰스쿠일가가 해외에서 빌린 채무가 100억 달러에 이르자...
"루마니아가 채무를 지고 있다는것은 국치다."라며, 복지예산을 긴축하여 불과 9년만에 채무를 다 갚았다.
간단히 말해 빚을 국민에게 떠넘겨서 갚았다는 얘기....
십시일반의 나쁜 예.
아들 니쿠는 각국의 외교관들이 모인 만찬에서 소변을 갈겨댔다..
전하의 개..
아들 니쿠가 한 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탐탁찮았던 엘레나는 니쿠가 해외로 나간사이 병사들을 시켜 그 미녀를 윤/간한 뒤, 그 사진을 니쿠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앵무새 중 한 마리가 훈련받은대로 "니쿠 바보"를 연발했다.
앵무새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에 끌려가 심문받은 뒤 사형당했다.
헐!
국민민들이 굶고 있는 상황에도 인민궁전을 세웠다.
단일 건물 중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거대한 건물이라고 한다.
특히 차우셰스쿠정책중 가장 악명높은것은 인구증가 정책....
인구가 국력이라고 생각하여 인구를 늘리려 했다.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고, 40세 이하의 여성은 5명이상 낳도록 강제했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 이결과 많은수의 아이들이 버려졌다.. 일명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아동포/르/노를 찍는데 팔려가거나, 거리의 부랑아가 되었다.
그의 몰락은 차우셰스쿠의 연설에 루마니아인들이 시위를 일으킨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당연히 연설은 생방송 중......
이후 연설은 평범하게 마무리 되지만, 분위기는 걷잡을수 없게 변하게 되었다.
그가 죽기 4일 전인 연설이었다.
상황은 급변하여, 진압하러 보낸 군대도 혁명세력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전국민이 하나가 되어 차우셰스쿠에게 저항했다.
군이 차우셰스쿠를 지지하지 않은것은 군대역시 차별받았기 때문이다.
고아원에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을 뽑아다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비밀경찰과 특별보안군을 조직했다.
친위대역할을 맡은 보안군은 최신장비와 높은보수가 주어졌고, 정규군은 박탈감을 느낄수밖에 없었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보안군은 가차없이 명령에 따라 시위대에 발포했고
정규군은 이에 맞섬으로 내전양상이 전개되었다....
보안군이 일시 패퇴하고 차우셰스쿠가 체포된후 즉시 총살된것도 보안군의 반격을 염려한 탓이었다.
실제 차우셰스쿠 처형후에도 이들을 진압하는데 많은 피를 흘러야 했다.
차우셰스쿠는 헬기에 탑승하여 북한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헬기 조종사가 머리를 굴려 헬기를 흔들면서 대공사격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헬기가 착륙하자 헬기조종사는 자신의 소속부대로 도망쳤다.
그후 차우셰스쿠 일행은 육로로 도망치다 붙잡혔다.
결국 차우셰스쿠 부부가 채포됬는데...
일부에서는 헌법에 의한 재판을 주장하였지만....
혁명군부에서
"야, 안돼애애애! 차우셰스쿠가 살아있다면 추종자들이 혁명을 일으키겠지?
그러면 내전으로 번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외국군대가 쳐들어 오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 역시 차우셰스쿠와 똑같이 처벌받겠지? 안돼!"
라고 주장하여 군법재판으로 그들을 처벌하기로 하였다.
차우셰스쿠는 누구도 자신을 재판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변호를 거부했다.
변호사는 "정신이상"을 주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지만, 차우셰스쿠는 이것도 거부했고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 재판에서 검사는 "나는 개인적으로 사형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므로 상관없다"하면서 사형을 구형했다.
차우셰스쿠가 사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군인들은 서로 자기가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난리였다.
일반적으로 총살시에는 절반만 실탄을 장전한다.
하지만 지원한 사람은 모집인원의 3배인 30여명에 이르렀고, 소총수들은 실탄을 각자 지참해 왔다.
결국 30명중 8명이 차출되었고, 또 그 중 3명만 차출되어 30발을 채우고 사격했다.
사형 집행 후 공동묘지에 묻혔다.
보통 서양식무덤은 대리석을 세우는데, 그의 무덤은 그냥 흙 봉분... 잡초와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부부매장도 허용되지 않아서, 그의 아내의 묘지는 차우셰스쿠의 묘지에서 약 5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머리의 방향이 서로 반대방향이 되도록 묻혔다.
그의 처인 엘레나의 무덤위에는 나무가 자라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구별이 안간다고 한다....
그의 아들 니쿠도 체포되어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간경변으로 석방된 후 빈에서 96년 사망하였다.
사망후 아버지의 무덤과 가까운 곳에 묻혔다.

인스티즈앱
아내가 멋대로 아이스크림 옆집에 줘서 빡친 치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