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한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사러왔던 시민들이 마스크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공지문을 보고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김이현 기자
서울 서대문구 농협하나로마트 안내데스크의 전화는 27일 오후 2~3분 간격으로 계속 울려댔다. 대부분이 마스크를 판매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전화를 받는 직원은 지친 표정으로 “월요일에 전화주세요. 그 때도 들어올지 말지 알 수 없으니 직접 오지 말고 꼭 전화하고 방문하세요”라며 기계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진열대에서 과자를 정리하던 한 직원은 손님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정부가 물량도 안주고 발표를 내면 어떡하냐. 직원들이 일을 할 수가 없다”며 역정을 냈다.
서대문구 홍은동 주민 박영실(63)씨는 이날 마스크를 사기 위해 들른 우체국과 하나로마트만 3곳째였다. 박씨는 “일회용 마스크 10개가 집에 있는 전부인데 우리 가족은 4명”이라며 “하루에 1개씩 써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 버틸 수가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점심시간을 틈타 마스크를 사러 들른 인근 은행 직원 조모(48)씨도 발걸음을 돌렸다. 조씨는 “오늘부터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를 판다는 기사를 보고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날 우체국과 농협하나로마트, 약국에서는 마스크를 사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물론 각 기관의 직원들도 반복되는 문의에 종일 시달려야 했다. 정부가 마스크를 이날 오후부터 농협과 우체국, 약국에서 판매할 것이라고 전날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직 각 기관·업체 간 공급량과 일정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채 정부가 성급하게 대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전날 발표 이전에 농협과 우정사업본부를 비롯해 국내최대 의약품 유통업체인 지오영컨소시엄 등과 공급량과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한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마스크 공급 관련해 그 어떤 공문이나 언급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역 인근의 한 약국 약사는 “아침에야 오늘 중 마스크를 공급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다음 달 초에나 들어온다고 업체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오전까지 마스크 20만6000장이 경기도 평택 물류센터에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제조사가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해 15만장으로 줄였다”면서 “가까운 지역도 28일쯤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26일 대구·경북 지역에 공급된 마스크 9만9000장은 이날 해당 지역에서 판매됐고 추가로 7만5000장이 공급돼 28일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이 열악한 지역을 우선시하기 위해 일단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은 판매 지역에서 제외된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날 오전 다음 달 2일부터 마스크를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오후에 입장을 바꿨다. 우정사업본부는 “27일 오후 5시부터 대구와 청도 등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우선 판매하고 28일부터 전국 읍·면 우체국에서 확대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확보된 물량을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면서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 공급을 둘러싼 혼선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홍 부총리는 “생산업체와 공적 판매처 간 세부 협의 때문에 정상적인 공적 물량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데 하루 이틀 더 시간이 걸린다”며 “마스크 수급 불안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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