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부터 이런 짤들과 함께 '상투를 풀면 정수리가 빡빡이다'라는 소리가 널리 퍼졌음
일단 생각 좀 해보면
조선은 숭유억불을 지향했어.
왕족조차 사사롭게는 불교 믿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숭유억불이었어.

그래서 멀쩡한 불상 목도 다 참수함
그리고 민머리는 승려의 머리지.
또한, 유교 교리에 따라 신체발부수지부모를 따랐어.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평생 안 자른 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신체발부수지부모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는 교훈을 강조하는 것에 가까워.
그래서 머리랑 수염도 가위로 자르고, 다듬었어.
위에 사진 보면 알겠지만, 하나도 안 자르면 저렇게 됨

이건 삼국시대 상투고

이건 신미양요 때 사진이야.
상투 크기가 다르지만, 평생 기른 머리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
조선시대 상투 크기가 이전에 비해 유달리 작은 이유는
"달걀 만한 상투"가 유행했기 때문이야.

고려까지만 해도 쌍상투가 흔했어.
(유물은 조선 후기 거지만, 헤어스타일 예시로 봐 줘..)
미혼 남자를 뜻하는 '총각'도 이 쌍상투에서 나온 말이야.
하지만 조선은 외쌍투를 틀었지.

뱃사공의 뒷머리를 보면,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다 튀어나왔어.
상투 크기는 작고.
평생 자란 머리에서 정수리만 빡빡 민 게 아니라,
머리 자체를 자르고 튼 거야.
그리고 변발, 촌마게를 하는 이웃 국가들....



변발



촌마게
이 두 나라는 문화와 기후가 달라.
1. 유목 민족이거나 내전이 많아 투구를 많이 썼고, 그에 따라 정수리 열 배출이 용이해야 했어.
2. 일본의 경우는 덥고 습하기까지 했고.
그래서 정수리를 밀거나 아예 꼬리만 남기고 밀었고, 음지에서 몰래 한 게 아니었어.
중국 청의 경우 변발을 하면 네 모가지가 붙어있을 것이고, 안하면 목과 머리가 분리될 거라고 해가며 변발을 정착시켰지.
이런 머리는 깔끔하게 유지하려면 매일같이 머리를 밀어야 했어.
그러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했고.
"깔끔한 두피=신분과 재력"이었어.
확실히 조선하고는 상황이 달라.
그렇다고 배코 치기가 조선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모습은 우리 나라 사람과 비슷한데 머리털은 복판을 깎고 둘레에만 약간 남겨 그것을 거두어 한 곳에 쪽진 것이 마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상투와 같았다.
정조실록의 기록이야.
외국인이 떠내려 왔는데, 정수리를 깎고 둘레를 남겨 쪽졌다고 묘사하고 있어.
그러면서 조선인들도 정수리를 잘라내고 상투를 튼다고 해.
하지만 이것만 보고 당당하게 정수리를 빡빡 밀고 다녔다고 하기는 어려워.
1. 숭유억불: 조선에서 민머리는 승려와 탈모 환자밖에 용납되지 않았고, 대머리는 어떻게든 남은 머리를 모아 상투를 틀었어.

이런 식으로.
2. 유교와 성리학: 신체발부수지부모에 따라 다듬는 건 되지만 밀면 안 됐던 조선시대야.
3. 오랑캐 취급: 청 건국 이후에 변발을 보고 "중원에 오랑캐가 가득해!!!ㅠㅠ"라며 경악하던 조선인들을 생각해 보자...
4. 조선은 승려, 대머리가 아닌 이상 민머리를 내놓고 다니지 않았다.
즉, 배코를 치더라도 빡빡이 아니라 숱 친 정도야..
정수리 탈모라면 모를까, 멀쩡한 머리를 빡빡 밀면 난리남
종합해보면 이런 결론이 도출돼
1. 공식적으로는 배코 치면 욕먹을 짓이다.
2. 하지만 몰래몰래, 사사롭게는 했다.
3. 평생 유교와 성리학 교리를 따르며 살아갔으며, 청나라와 왜를 오랑캐라고 하던 선비들이 했을리가..?
그리고 배코 관련해서 '정수리 위치 잡으려고' 했다는 소리도 있는데
그냥 빗으로 슥슥 빗어 올려서 돌돌 말아갖고 똥머리 한 게 상투야.
위치 잡는 거랑은 상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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