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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선은도 중-무과 시험 장면>
조선시대 당시 문과에 비해서 무과는 상대적으로 쉽고 무시받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무과의 경우라도, 그 시험의 난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주를 벗어난 그 이상이었다.
지금부터 무과의 시험과정과 그 평가과목을 알아볼 것이다.
먼저 무과는 문과와는 다르게 소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초시-복시-전시를 진행하였다.
-초시 初試-
먼저 첫 시험인 초시,
초시에서 치뤄지는 무과의 기본 평가 과목은 이렇다.

<보사-지상에서 활쏘기>
목전-나무로 만든 화살로 240보(280~360m) 거리의 과녁에 3발이 명중하는지를 채점
철전-육량전, 아량전, 장전 등의 무거운 화살로 80보(90~120m) 거리의 과녁에 3발이 명중하는지를 채점
편전-통아를 이용하여 애기살이라는 작은 화살을 130보(150~200m) 거리의 과녁에 3발이 명중하는지를 채점
+ 유엽전-효종 때 체택, 120보(140~180m) 거리의 과녁에 5발이 명중하는지를 채점
▷▷▷ 현대까지 이어져 온 국궁 규정의 시초

<기사-마상에서 활쏘기>
제한시간 내에 말을 타며 대우전으로 30보(36~45m) 간격으로 존재하는 일정거리의 5개 과녁을 연속으로 얼마나 명중시키는지를 채점

<기창-말타며 창 다루기>
말을 몰면서 왼쪽과 오른쪽 겨드랑이를 번갈아가며 창을 낀 채 차례로 세 개의 허수아비를 찌른 뒤,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보면서 창으로 뒤를 가리키고 나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시험에서는 정확성과 자세를 평가하였으며, 창을 목표물에 정확히 맞혀도 말을 빨리 몰지 않거나 말채찍을 놓치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 허수아비 사이의 거리는 각각 25보, 창의 길이는 15척 5촌(약 370cm)이었다.
▷▷▷ 조선시대 후기엔 마상 편곤으로 바뀜

※ 마상 편곤의 모습 ※

<격구>
말을 타거나 직접 뛰면서 막대기로 공을 쳐 목표물 안으로 공을 통과시키는 경기
▷▷▷ 조선시대 후기엔 사라짐 : 마상 편곤이 있어서 기마술을 판별할 수 있기 때문
※ 이후 조총으로 대체, 다만 전시에서는 최종 순위 결정의 평가 용도로 변함이 없었음
그리고 과목의 편성에서 알 수 있듯 당시의 무과에서 중요시 가장 중요시한 건 궁술이었다.

당시 습사의 과녁 중 하나였던 '웅후'
당시 무과시험에서 궁술의 표적 기준은 이러하였다.
<보사>
목전-사방 1장 8척(가로 190cm x 세로 242cm)
철전-4척 6촌(가로 120cm x 세로 120cm)
편전-8척 3촌(가로 196cm x 세로 196cm)
유엽전-편전과 동일
<기사>
보사의 철전과 동일한 4척 6촌
습사의 합격기준은 당연하겠지만 과녁의 정 중앙부에 가까운 화살이 얼만큼 많은지를 판별하는 것이었다.
※ 그리하여 과녁의 정 중앙인 짐승 그림을 많이 맞출수록 가산점이 주어졌다.
이렇게 초시에서 통과하여 다음 시험인 복시를 치룰 수 있는 인원은 190명
이들은 원시(중앙 훈련원에서 수련) 70명, 향시(지방에서 개인적으로 수련) 120명으로 구분되었다.
-복시 覆試-
복시는 무과에서의 최종 합격자 28인을 선정하는 시험이다.
복시에서의 평가 과목은 초시와 동일한 무예 실기, 거기에 병법서와 유교 경전, 법전과 역사서를 분야별 1권씩 무작위로 선정, 그 이해도를 답하거나 서술하는 방식이 추가되었다.
한 마디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장교로서 요구되는 전술적 교리와 지식, 판단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복시에서 요구되는 필수적인 경서들은 다음과 같다.

<병법서>
조선의 무과에서 요구되는 경서 중 가장 중요하다 볼 수 있는 병법서는 '무경칠서' 였다.
'무경칠서' 는 동양 문화권에서 잘 알려진 7가지의 병법서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손자병법-춘추전국시대, 손자로 불리우는 오의 손무와 제의 손빈이 저술한 도합 31편의 병법서
오자 병법-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문후와 무후를 섬겼던 장수인 오기가 저술한 병법서
육도-주나라 최고의 개국공신인 여상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6가지의 전략, 전술적 교리
삼략-장량의 스승으로 알려진 황석공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3가지의 전략, 전술적 교리
울료자-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의 책략가 '울료' 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병법서
사마법-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마양저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병법서
이위공문대-당 태종과 그의 신하인 이정이 군사의 운용방안에 대해 서로 문답한 내용

<유교 경전>
무과에서도 당연히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와 오경(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이 중시되었다.

<법전, 역사서>
무과에서 주로 요구했던 법전과 역사서는 통감, 역대병요, 장감박의, 소학, 무경 이었다.
※ '경국대전' 은 필수과목이었다.
이렇게 복시를 거쳐 합격한 최종 28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시' 에서 최종 순위 결정전을 치루게 된다.
-전시 殿試-
전시는 임금 앞에서 직접 치뤄지는 최종 합격자 28인의 순위 결정전이다.
이것은 현대로 치자면 임관을 소위로 시작할지, 중위로 시작할지, 대위로 시작할지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
평가는 마상 격구와 보행 격구로 치뤄졌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1~3등은 갑과, 4~8등은 을과, 9~28등은 병과로 나뉘어진다. 그리하여 갑과는 종 7품으로, 을과는 종 8품으로, 병과는 종 9품으로 관작을 제수받게 된다.
※ 그 예로 이순신 장군은 1576년 식년시 무과에서 병과 4등(총 12위)으로 급제
첫 관직을 종 9품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배정받는다.
아 그리고 애초부터 초시의 마상 격구와 같은 실기과목에서 요구받는 것...

마상재 기본이수
그렇다... 무과 응시자들도 이쯤되면 괴물이 따로없다...

사극에서 엑스트라로 나오는 이 군관들도 사실은 엄청난 사람들이다. 다시는 무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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