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이씨
영조가 정성왕후 서씨는 없는 취급을 했어도 영빈이씨는 그래도 사랑했지?싶어서 써봄
궁녀출신 후궁이지만 의외로 양반가 출신 그것도 대비의 지밀나인이였음(원래 웃전의 나인은 건드리면 안되는게 법도,아들 사도세자가 대비의 침방나인을 건드려서 영조가 노발대발했다고/아들이나 애비나...)

의빈성씨처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승은받음(당시 31살)
영조가 출신성분 컴플렉스에 하나뿐인 세자(효장세자) 를 잃어 자식을 꼭 봐야하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승은을 받은지 9년만에 딸을 내리 5명을 낳고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이씨는 충분히 총애한거 같음(사도세자 출산 당시도 이미 38살 그후에도 화완옹주 낳음)

정성왕후 서씨는 환갑잔치도 안해주고 자신의 곁에서 멀리 보내고 사망후에도 하나도 안 슬퍼했다면 영빈이씨는 경종의 계비(선의왕후) 상중임에도 구설수에 오를 것을 알고도 영빈을 승급시키고 사도세자 낳을 당시 곁을 지켰고 사망후에 슬퍼하며 후궁 제일의 장례로 치를 것을 명했고 손자 정조(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가 종법상 남남인대도 발인때 곡립을 하게 했다

그니까 궁녀에서 왕의 총애로 손주가 왕까지 되었으니 최고 출세를 한거긴 한데 굉장히 슬픈 인생이였음
사도세자가 생모인 자신을 챙길때면 사도세자의 정신병을 걱정했고 막내딸 화완옹주 빼곤 자식 모두 자신보다 먼저 죽었고 화완옹주 마저 일찍 남편 잃고 폐서인까지 된 것을 생각하면 자식복이 너무 없었음
자신도 사도세자 3년상 끝나자마자 사망했는데 사망시점이 너무 절묘해서 자살 아닌가 추측
병사했다면 며느리 혜경궁 홍씨가 문병을 갔을텐데 그런 기록도 없고 영빈 사망직후 한동안 혜경궁이 일기를 중단을 해서 그런 추측이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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